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넥스페리아 둘러싼 자동차용 칩 공급 위기, 핵심 쟁점은 무엇인가

■ 글로벌 자동차업계가 주목하는 ‘넥스페리아 사태’

세계 자동차 제조사들이 의존해 온 ‘저가·대량’ 전력제어용 칩의 대표 공급사 넥스페리아(Nexperia)가 갑작스러운 수출 봉쇄 국면에 놓이면서 생산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와 중국 정부가 주도권을 둘러싸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미국의 대(對)중국 기술견제 기조가 맞물려 사태는 단기간 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025년 10월 29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네덜란드 정부는 중국계 모회사 융테크(Wingtech)가 넥스페리아의 기술과 생산설비를 중국으로 이전하려는 움직임을 ‘국가 안보 및 첨단 기술 유출 우려’를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중국 정부는 넥스페리아가 중국 현지에서 가공·패키징한 칩의 해외 반출을 사실상 금지하며 ‘수출 봉쇄 카드’를 꺼내들었다.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 본사를 둔 넥스페리아는 원래 필립스 전자(Philips Electronics) 산하 반도체 부문이 분사해 탄생한 기업이다. 현재는 연간 1,100억 개가 넘는 반도체를 생산하며, 매출은 2024년 기준 20억 달러(약 2조7,000억 원)를 기록했다. 제품군은 대부분 트랜지스터·정류 다이오드 등 ‘디스크리트(Discrete)’ 전력제어 칩으로, 개당 수 센트 수준의 저가품이지만 자동차·가전·산업장비 등 거의 모든 전자제품에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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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크리트 칩’이란 무엇인가

디스크리트 칩은 특정 기능을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소형 반도체 소자를 말한다. CPU·GPU와 같은 복합 회로(System-on-Chip)와 달리 구조가 단순하고 가격이 낮지만, 배터리 전압을 안정화하거나 전류를 스위칭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 전기·전자 장치 내 모든 ‘전력 흐름의 게이트키퍼’라 할 수 있어 품질·내구성 요건이 까다롭다.

자동차의 경우 배터리에서 모터로 전력을 전달하고, 라이트·센서·제동장치·에어백 컨트롤러·인포테인먼트 시스템·전동 윈도 등 수백 개 전장 부품의 온·오프 제어에 디스크리트 칩이 쓰인다. 따라서 단가가 낮더라도 품질 인증(Automotive Grade)에는 수개월이 소요되며, 한 번 승인된 공급망을 바꾸기 어렵다.


■ 사태의 배경: 미·중 기술패권 전선이 네덜란드로

넥스페리아 모회사 윙테크는 2019년 36억 달러에 넥스페리아를 인수하며 유럽 반도체 자산 확보에 나섰다. 그러나 2024년 미국 상무부가 윙테크를 제재 리스트(블랙리스트)에 올리자, 1) 올해부터 넥스페리아도 2차 제재 대상이 될 위험이 대두됐다. 실제로 ‘예외 승인’을 받지 못하면 미국 기업과의 거래 제약이 불가피하다.

지난 9월 30일 네덜란드 경제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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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페리아의 기술·설비 이전 시도를 차단하겠다”

고 선언했고, 네덜란드 법원 역시 창업주이자 CEO인 장쉐젠(장설진)을 ‘경영진 관리 부실’을 이유로 직무정지시켰다. 중국 정부는 즉각 반발해 넥스페리아 제품의 해외 출하를 중단시켰으며, 회사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공급 보장을 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 대안은 있는가? ― 공급망 리스크 확대

업계 관계자들은 넥스페리아가 전 세계 자동차용 디스크리트 칩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긴장한다. 주요 경쟁사는 인피니언(Infineon), 온세미(Onsemi),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후지전기, 르네사스 등이 있지만, ‘월 100억 개’ 단위 공급능력을 단기간에 대체하기는 어렵다.

또한 자동차용 칩은 부품별로 단종·재승인(리퀄리피케이션) 절차에만 최소 3~9개월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재고가 소진되면 라인 전체 가동을 멈춰야 하는 ‘부품 한 개=차량 한 대’의 생산 구조가 형성돼 있다.


■ 완성차·부품업계 피해 현황

닛산(Nissan),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 제너럴모터스(GM) 등은 이미 “디스크리트 칩 재고가 예상보다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독일 부품사 보쉬(Bosch)는 살츠기터 공장 직원들의 단기 휴업(furlough) 준비에 들어갔다.

혼다(Honda)는 28일(현지시간) 멕시코 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미국·캐나다 공장도 생산 조정을 시작했다. 반면 일부 전기차 스타트업은 아직 초기 생산 규모가 작아 즉각적 타격은 적지만, “공급망 한 업체 의존도”라는 동일한 리스크를 안고 있다.


■ 해법 모색: 외교 무대와 기업 전략의 기로

네덜란드 정부는 중국과 협상을 진행 중이라 밝혔으나, 구체적인 시한은 제시하지 않았다. 업계는 이번 주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회담에서 의제가 다뤄질 가능성에 주목한다.

넥스페리아 측은 중국·미국 정부와 ‘수출 규칙’ 관련 직접 협의 중이라고 밝혔으며, 윙테크는 “모회사로서 완전한 통제권과 소유권이 회복되어야만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만약 교착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고객 이탈 가속화 또는 ‘유럽 사업부와 중국 사업부 분할’이라는 구조조정 시나리오도 현실화될 전망이다.


■ 기자의 시각: ‘작지만 결정적’ 부품의 글로벌 치킨게임

이번 사태는 ‘값싸고 흔한 부품’으로 간주되던 디스크리트 칩이 사실상 ‘전기·전자 생태계의 아킬레스건’임을 재확인한 사건이다. 유사한 예로 2020~2022년 차량용 MCU 품귀 현상이 있었지만, 뒤늦은 설비 증설은 수요를 따라잡지 못했다. 이른바 ‘자본투입 대비 이익이 낮은’ 공정이어서 공급사도 과잉투자를 꺼린다.

네덜란드·중국·미국 세 국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만큼, 단순한 민간 M&A 갈등을 넘어 ‘과학기술 주권’‘글로벌 공급망 안정성’을 둘러싼 외교전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완성차 업체들은 “멀티소싱 확대·표준화된 인증 프로세스”를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고 있으며, 정책당국 역시 범유럽 차원의 전략 비축제도 마련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결국 시장은 ‘단가가 아닌 가용성’으로 가격을 재평가하게 될 것이고, 이는 새로운 반도체 공급 네트워크 재편의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단기적으로는 생산 중단 사태가 추가 발생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리쇼어링’과 ‘친(親)동맹국 공급망’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 주석 1) 미국 상무부 블랙리스트(Entitiy List)는 자국 안보·외교 정책상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는 기업·기관을 지정해 라이선스 없이 미국산 기술·장비 수출을 제한하는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