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빅4’ 은행 가운데 하나인 내셔널 오스트레일리아은행(National Australia Bank·NAB)이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며 금융업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금융산업노조(Finance Sector Union·FSU)는 410개의 현지 기술·엔터프라이즈 운영(Technology & Enterprise Operations) 직무가 폐지되고, 동시에 인도와 베트남에 127개의 신규 포지션이 신설된다고 10일(현지 시각) 밝혔다.
2025년 9월 10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NAB는 인건비 절감과 글로벌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이번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이로써 호주 금융권의 고용 불안이 재점화되면서 노조·정치권·지역사회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가 반응도 즉각적이다. 이날 오전 11시 20분(호주 동부표준시·GMT+10 기준) S&P/ASX 200 지수는 0.3% 상승했으며, NAB 주가는 1.5% 오른 43.44호주달러를 기록했다. 시장은 감원에 따른 비용 효율화와 해외 아웃소싱 확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셈이다.
FSU의 날 선 비판
FSU 전국 회장 웬디 스트리츠(Wendy Streets)는 성명을 통해 “
이틀 연속 두 은행이 대규모 감원을 발표했다. 이는 단일 은행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 전체가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희생양 삼아 동일한 의제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은행이 충분한 순이익을 내고 있음에도 비용 절감을 명분으로 일자리를 해외로 이전한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참고로 ANZ 그룹(ANZ Group) 역시 전날 3,500명 감원 계획을 발표해 충격을 더했다. NAB와 ANZ는 각각 시장 가치 기준 호주 2·3위 은행으로, 흔히 ‘빅4’(NAB·ANZ·커먼웰스은행·웨스트팩은행)로 불린다. 두 은행이 연속으로 감원에 나서면서, 나머지 두 곳도 동참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 중이다.
왜 인도·베트남인가? — 글로벌 아웃소싱의 배경
NAB는 인도 푸네(Pune)와 베트남 호찌민(Ho Chi Minh City)에 이미 IT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인도는 방대한 IT 인력풀과 영어 사용 인구 덕분에 다국적 금융사의 핵심 개발·백오피스 허브로 자리 잡았으며, 베트남은 젊은 노동력·합리적 임금·정부의 ICT 육성 정책으로 최근 ‘신흥 IT 메카’로 부각된다.
은행 측은 “해외 거점 확충은 디지털 혁신을 가속화하고, 24시간 글로벌 서비스를 통해 고객 경험을 높이는 방안”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노조는 “기술 혁신이 궁극적으로 국내 고용 축소와 지역 경제 침체로 귀결될 것”이라고 반박한다.
호주 금융권 구조조정 — 통계로 보는 추세
호주 통계청(ABS)에 따르면, 2020년 이후 금융·보험업 고용은 연평균 1.8% 증가세를 보였으나 동시에 IT·백오피스 부문의 해외 이전도 가속화됐다. 특히 2022~2024년 사이 ‘빅4’ 은행이 발표한 누적 감원 규모는 8,000명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핀테크 경쟁 격화, 디지털 전환 비용, 규제 준수 강화 등을 주된 요인으로 꼽는다.
로열멜버른공대(RMIT) 금융학부의 레이첼 리(Rachel Lee) 교수는 “
AI·클라우드 전환이 빨라질수록 은행들은 점포망을 축소하고, 고임금 시장에서 저임금 시장으로 인력·운영을 이동시키는 경향
”이라고 진단했다.
투자자 관점과 향후 전망
시장 참가자들은 비용 감소가 순이자마진 및 ROE(자기자본이익률) 개선으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사이버보안·데이터 주권·서비스 품질 유지가 주요 리스크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호주 금융당국(APRA·ASIC)은 해외 외주 확대 시 “고객 데이터 보호·규제 준수 책임은 원청 은행이 전적으로 부담한다”는 방침을 재차 강조한 바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단기 주가 상승은 비용 절감 기대감이 선반영된 결과이나, 장기 주주가치는 디지털 역량 내재화와 고객 신뢰 확보 여부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향후 몇 분기 실적 발표에서 IT 전환 비용·감원 비용·ESG 평가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면밀히 추적할 필요가 있다.
알아두면 좋은 용어
1 S&P/ASX 200 지수 — 호주 증권거래소(ASX)에 상장된 시가총액 기준 상위 200개 기업으로 구성된 대표 주가지수로, 한국의 코스피200과 유사한 벤치마크다.
2 ‘빅4’ 은행 — NAB, ANZ, 커먼웰스은행(CBA), 웨스트팩(Westpac)을 지칭하며, 예금·대출·자본시장 등 주요 금융서비스 시장 점유율이 80% 이상에 달한다.
3 FSU(Finance Sector Union) — 호주 금융산업 종사자 10만여 명이 가입한 최대 노조로, 임금·근로조건·직업 안정성 관련 협상을 주도한다.
이번 NAB 감원 사태는 호주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업계가 직면한 디지털 전환·비용 절감이라는 거시 흐름을 재확인시켰다. 노조의 반발, 정부의 규제, 투자자의 기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은행들이 어떤 균형점을 찾아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