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버그발 –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중앙은행(South African Reserve Bank, SARB)이 재무부 승인 없이 인플레이션 목표를 하향 조정한 사실이 알려지며 정책 공조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2025년 8월 1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중앙은행 총재 레세차 크가냐고와 재무장관 에녹 고동와나는 평소 공개석상에서 의견 불일치가 드물지만, 이번 물가 목표 조정 문제에서는 명확히 갈라섰다. 총재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목표치를 현행 중간값 4.5%가 아닌 3% 수준으로 사실상 끌어내리겠다고 발표했으나, 재무장관은 절차적 문제를 이유로 즉각적 승인을 거부했다.
■ 시장 반응: 채권 랠리·호전된 투자 심리
매트릭스 펀드 매니저스(Matrix Fund Managers)의 킴 실버먼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이번 발표는 인플레이션 타기팅 권한이 어디에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고 평했다. 그럼에도 남아공 국채는 5년 만기물 금리가 최저치로 떨어지는 등 강세를 보였다. 한 주간 2.2% 수익률을 기록해 터키·칠레·브라질·멕시코 국채를 모두 앞질렀다.
인터치 캐피털(InTouch Capital)의 표트르 마티스 선임 외환 전략가는 이번 조치가 장기적으로 물가 기대를 확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미국 무역 관세 위험과 맞물려 경기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정책 결정 과정 논란
시장 관계자 대다수는 언젠가 목표치가 낮아질 것이라는 점을 기정사실로 보았으나, 총재가 국고 변경 절차를 건너뛰고 선제적으로 의향을 밝힌 데에는 놀랐다는 반응이 우세했다. BNP파리바 마켓츠360의 제프리 슐츠 CEEMEA 담당 책임 이코노미스트는 “결정 자체는 놀랍지 않았지만, 국가 재무부가 공식적 하향 조정을 발표하기 전에 SARB가 먼저 3% 목표를 언급한 것이 투자자들을 당황시켰다”고 말했다.
크가냐고 총재는 “현행 3–6% 범위는 지나치게 넓어 국가 경쟁력을 훼손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고동와나 장관은 “기술적·정치적 협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일방적 발표는 적절치 않다”고 맞섰다. 그는 성명을 통해 “모든 조정은 재무부·중앙은행·각료회의·이해관계자 간 포괄적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을 바꾸지 않는 것도 비용이지만, 잘못된 방식으로 바꾸는 데 따른 대가 또한 크다.” — 레세차 크가냐고 SARB 총재
■ 단기 충격 vs 장기 이득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들은 SARB가 금리 인하를 선제적으로 단행할 가능성을 점쳤다. 중앙은행 자체 전망치보다 더 완만한 물가 상승률을 예측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꾸로 글로벌 지정학 리스크와 국내 가격 압력으로 인해 금리를 더 오래, 더 높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임금과 상품 가격은 점진적으로 조정되기에, 물가 목표가 내려가면 소비 둔화·투자 위축·고용 감소 등 단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남아공 주요 노조는 과거 비슷한 조치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투자은행 인베스텍(Investec)의 애너벨 비숍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재무부는 이미 소비자 부담 증대를 우려해 왔다”면서도, “MPC는 유연한 목표 달성 기조를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 전문가 해설: ‘인플레이션 타기팅’이란?
인플레이션 타기팅은 중앙은행이 명확한 물가상승률 목표를 공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금리·통화량을 조정하는 통화정책 체계를 말한다. 남아공은 2000년부터 3–6% 범위를 공식 채택했다. 목표 밴드가 좁아지면 정책 신뢰도는 높아지지만, 경제 주체들이 신속히 비용·가격을 조정하기 어려운 구조라면 경기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SARB는 헌법 제224조에 따라 “통화 가치 수호“를 최우선 임무로 삼는데, 이는 곧 안정적 물가를 의미한다. 반면 재무부는 국민경제 전반을 총괄하며, 물가 안정 외에 성장·고용·소득 불평등도 고려해야 한다. 이번 논쟁은 양 기관 간 정책 균형점을 둘러싼 시각차를 여실히 드러낸 사례로 평가된다.
■ 향후 관전 포인트
전문가들은 11월 중간 예산안 발표 전까지 재무부와 중앙은행이 공식 합의안을 마련할지 주목하고 있다. 만일 재무부가 목표 하향을 추인하면, SARB는 중립금리 수준을 재산정하고, 신흥국 가운데 가장 강력한 통화 긴축 기조를 이어갈 전망이다. 반대로 고동와나 장관이 완강히 버틸 경우, 정책 신뢰도 저하와 함께 랜드화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크가냐고 총재는 기자회견을 마치며 “정책 전환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라면서도 “결정을 미루는 것 역시 더 큰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