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금융시장이 다음 주 예산안을 앞두고 최대 변곡점을 맞고 있다. 채권(길트), 주식, 파운드화의 향방이 모두 재무장관 레이첼 리브스가 재정 긴축과 성장 지원 사이에서 얼마나 정교한 균형점을 찾느냐에 달려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025년 11월 19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지난 금요일 소득세 인상 계획이 없다는 리브스의 입장에 놀랐다고 반응했다. 이는 며칠 전만 해도 자신의 재정준칙을 뒷받침하기 위한 인상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 직후여서 시장의 혼란을 키웠다.
누빈(Nuveen)의 글로벌 투자전략가이자 거시신용 총괄인 로라 쿠퍼는 “시장은 의미 있는 재정 통합을 통해 신뢰의 신호를 찾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미래에 대비한 완충장치를 쌓기 위해서는 수입 창출을 전면에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적 리스크도 상승하는 분위기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집권 노동당 내부의 비판에 직면해 있으며, 이러한 정치적 압력이 예산 설계의 여지를 좁힐 수 있다는 경계감이 퍼지고 있다.
1/ 채권시장 경계 고조
채권시장에서는 정부가 단기 정치적 이익을 위해 장기 재정통합을 희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0월에 크게 하락했던 영국 10년물 차입비용(수익률)은 지난 금요일 7월 이후 가장 큰 일일 상승을 기록했다.
시장은 2022년 보수당 정부의 재원 조달 없는 감세안 발표 이후 벌어진 길트 급락 사태의 트라우마를 여전히 안고 있다. 대형 투자자들은 리브스에게 경기 충격에 대비한 재정완충을 100억 파운드에서 두 배 수준으로 늘리라고 촉구해 왔으며, 일부는 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소득세 인상을 거론한다.
스테이트 스트리트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거시정책 전략가 블라디미르 고르시코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득세 인상 없이 정부가 충분한 세입을 확보해 내년 다시 같은 재정 압착에 빠지는 일을 피할 수 있겠는가?”
베렌베르크의 영국 수석 이코노미스트 앤드루 위샤트는 총선 전 약속했던 주요 세율(메인 택스) 동결을 지키면 리브스가 재정여력(fiscal headroom)을 늘리기 매우 어려워진다고 평가했다. 베렌베르크는 소득세율 1%포인트 인상이 2029-30 회계연도에 105억 파운드 이상의 세수를 창출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2/ 파운드화, 예산안의 풍향계로
투자자들은 파운드화를 예산 실망의 ‘최우선 희생양’으로 지목하며 공세적으로 포지션을 조정했다.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의 수석 시장 전략가 엘리아스 하다드는 “영국의 재정 드래그가 파운드에 추가 하방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약 1.31달러 수준의 파운드/달러(GBP/USD)는 3개월 연속 달러 대비 하락이 예상되며, 유로 대비로도 2023년 4월 이후 최저권에 근접해 있다. 올해 대부분 기간 동안 스토리지가 강세 포지션을 유지해 왔지만, 경기와 금리 전망이 흐려지면서 해당 신념은 약화했다.
아버스낫 라담의 투자운용 총괄 에렌 오스만은 추가적인 파운드 약세에 대비한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세금 인상과 지출 축소가 영란은행(BoE)의 금리 인하 쪽으로의 유도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3/ 소매·주택건설 업종에 주목
바클레이스는 예산안이 시장에 긍정적 ‘서프라이즈’를 주어 국채 수익률을 낮춘다면, 내수 비중이 높은 FTSE-250 지수 내에서 주택건설, 식료품 소매, 유틸리티, 부동산 등 재정 민감 업종이 반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들어 FTSE-250은 약 4% 상승을 기록한 반면, 글로벌 노출이 큰 FTSE 100은 거의 17% 급등했다. 애널리스트들은 주류·도박·담배에 대한 세금 인상 가능성과, 항공여행·플라스틱·설탕음료에 대한 새 부담금 도입 가능성을 지목했다. 다만 이러한 조치는 수요를 둔화시키고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누빈의 로라 쿠퍼는 글로벌 경기 노출도가 높은 대형주 선호 기조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4/ 은행주를 잊지 말아야
은행주 역시 예산 전 관측에 민감하게 휩쓸렸다. 특히 리브스가 소득세 인상 배제 쪽으로 기울어 보인 이후 낙폭이 커졌다. 내트웨스트, 바클레이스, 로이즈는 지난 금요일 일제히 급락했다. 그럼에도 은행 섹터는 올해 누적 40% 이상 상승을 유지하고 있다.
렌 스털링의 CIO 로리 맥퍼슨은 “
과세 측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업종인 만큼, 은행주 전반에 차익실현 매도가 나타났다
”고 평가했다.
5/ 영란은행(BoE) 금리 인하 베팅
머니마켓은 12월 금리 인하가 단행될 확률을 약 75%로 반영하고 있다. 최근 인플레이션 둔화 신호가 감지되는 가운데, 예산안이 성장 전망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해석될 경우 금리 인하 기대는 더 커질 수 있다.
바클레이스 주식부문 수장 엠마누엘 코는 “
긴축이 성장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도, 물가에 큰 충격을 주지도 않으면서 BoE가 더 과감히 인하할 수 있는 환경이 이상적이다
”라고 말했다. 그는 예산안 이후 길트 매도세가 나오더라도 인하 기대가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용어 해설과 맥락
길트(Gilts)는 영국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말한다. 재정 드래그(fiscal drag)는 명목소득 상승과 과표 구간 고정 등으로 실질 세부담이 늘어나 성장과 소비에 제약이 생기는 현상을 가리킨다. 재정여력(fiscal headroom) 또는 재정완충(financial buffer)은 예기치 못한 경기 충격에도 재정준칙을 위반하지 않고 대응할 수 있는 여유 재원을 의미한다.
FTSE-250은 영국 내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중대형주 중심의 지수로, FTSE 100보다 국내 경기와 재정정책 변화에 민감하다. 반면 FTSE 100은 글로벌 매출 비중이 큰 대형주가 많아 파운드 약세가 실적에 완충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전면 배치(front-loading)된 세수란 초기에 세입을 집중적으로 확충해 시장 신뢰를 선제 확보하려는 전략을 말한다.
분석: 시장 신뢰의 조건과 시나리오
이번 영국 예산안의 핵심은 신뢰다. 재정준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성장 모멘텀을 지키려면, 세입 확충의 신뢰성과 지출의 효율성을 동시에 제시해야 한다. 시장은 초기 세수 강화와 합리적 지출 조정을 통해 충격 흡수용 완충을 늘리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반대로 단기 인기영합으로 비칠 경우, 길트 수익률 급등과 파운드 약세가 결합해 금융여건을 더 긴축적으로 만들 수 있다.
주식시장은 국채 수익률 경로에 민감히 반응할 전망이다. 수익률 하락은 FTSE-250 내 내수업종에 상대적 우호로 작용하겠지만, 세금 인상·부담금 신설이 소비를 둔화시키면 일부 업종에서는 이익률 압박과 가격 전가에 따른 인플레 리스크가 동반될 수 있다. 파운드는 예산안의 신뢰성이 높을수록 불확실성 프리미엄이 낮아지고, 반대의 경우 BoE 인하 기대와 성장 우려가 맞물려 변동성 확대 가능성이 크다.
결국 리브스가 재정여력 확충과 성장 동력의 정교한 균형을 제시한다면, 시장은 2022년의 트라우마와 거리를 두며 안정적인 리프라이싱에 나설 개연성이 있다. 반면 그 균형이 흔들릴 경우, 길트 매도와 파운드 약세가 동반되고, BoE의 완충적 인하 기대가 그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하는 혼합적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By 조이스 알베스, 다라 라나싱헤, 나오미 로브닉 | 출처: 로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