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증시가 ‘불(Bull) 기운’으로 들썩이고 있다. 피터 틸의 지원을 받는 암호화폐 거래소 불리시(Bullish)가 8월 13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되자마자 주가가 두 배 이상 치솟으며 시초가 대비 84% 상승 마감했다.
2025년 8월 15일, CNBC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번 불리시 상장은 세간에 ‘기술주 IPO 강세장이 본격적으로 재개됐다’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불리시에 앞서 7월에는 디자인 소프트웨어 기업 피그마(Figma)가 상장 하루 만에 250% 뛰었고, 6월에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Circle)이 168% 급등했다.
3년 전만 해도 가파른 인플레이션과 금리 급등으로 신규 상장 창구가 사실상 닫혔다. 기술주는 폭락했고, 사모자본 유동성도 고갈되면서 ‘현금 적자 스타트업’들은 성장 대신 효율·수익성 확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스닥지수가 올해 4월 저점 대비 40% 넘게 회복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자 벤처캐피털과 CEO들은 다시 공모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규모 관세 계획 탓에 4월 잠정 중단됐던 스터브허브(StubHub)와 클라르나(Klarna)의 로드쇼도 재개 조짐을 보인다. NYSE의 린 마틴(Lynn Martin) 사장은 피그마 상장 직전 CNBC 인터뷰에서 “이번 수요가 다른 기업들의 ‘물꼬’를 트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스닥 CEO 아데나 프리드먼(Adena Friedman) 역시 “연말 전까지 상장 대기 중인 ‘건강한 리스트’가 존재한다”며 낙관론에 힘을 보탰다.
IPO 창구 다시 열리다
“IPO 창구가 열렸다. 우리는 포트폴리오 기업에 상장 준비를 권유 중이다.” — 릭 하이츠먼(FirstMark 파트너)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기업가치 100억 달러 이상인 미국 벤처 지원 기술기업만 24곳이 넘는다. 스터브허브는 최근 증권신고서를 업데이트하며 조만간 상장이 임박했음을 암시했다.
규제 환경 변화도 변수다. SEC(미 증권거래위원회) 신임 의장 폴 앳킨스(Paul Atkins)는 7월 “IPO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며 복잡한 공시·소송 위험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프리드먼 CEO는 “공시 요건·위임장(proxy) 절차 등 상장 문턱을 낮추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잇따른 고수익·고위험 데뷔
올해 들어 차임(Chime)이 37%, 이토로(eToro)가 29% 상승한 데 이어, 헬스테크 분야 힌지 헬스(Hinge Health)와 오마다 헬스(Omada Health)도 성공적으로 증시에 합류했다. 그러나 과도한 첫날 상승률이 ‘고의적 저평가’ 논란을 재점화했다.
벤처투자자 빌 거릴리(Bill Gurley)는 2020~2021년 IPO 호황기에도 ‘직상장(Direct Listing)’을 주장하며, 공모가 대비 급등은 은행 고객에게 “공짜 돈을 나눠주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번에도 그는 “33달러에 산 주식을 하루 만에 90달러 넘게 팔 수 있게 한 것은 예상된·의도된 결과”라며 불만을 표했다.
기업공개 컨설팅사 Class V Group의 리제 바이어(Lise Buyer)는 링크드인 글에서 “상장 기업은 보통 발행주식 7% 내외만 공모한다”며, 실적이 뒷받침된다면 “추가 지분 매각 기회는 충분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서클은 이번 주 1,000만 주를 추가 매각하는 2차 공모를 발표했고, 3월 상장 후 주가가 150% 오른 코어위브(CoreWeave)도 대형 증권사가 연이어 블록 트레이드를 실행했다.
시장 과열 경고음
바이어는 “현재 기관이 지불할 의향이 있는 가격과 개인투자자(리테일)가 감정적으로 지불하는 가격 간 격차가 1999~2000년 닷컴 버블 이후 최대”라며 경계를 촉구했다. 그는 “금주령(Prohibition)이 끝난 뒤 과음하듯, 일부 투자자는 IPO 시장에서 ‘과도한 흥분’ 상태”라고 지적했다.
■ 용어 해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등 법정통화에 1:1로 연동돼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한 암호화폐다.
직상장(Direct Listing)은 신규 주식을 발행하지 않고 기존 주주 지분을 바로 시장에 내놓는 방식으로, 수요·공급에 따라 공모가 왜곡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블록 트레이드는 기관투자가가 대량 주식을 한꺼번에 거래하는 것으로, 통상 장 마감 이후 시간외 시장에서 이뤄져 시장 충격을 완화한다.
■ 기자 관전포인트
기술 기업들이 실질 매출과 이익 기반을 갖추고 상장에 나선다는 점은 과거 닷컴 버블과의 가장 큰 차별점이다. 다만 첫날 ‘따상(따블+상한가)’에 가까운 상승률이 반복된다면 밸류에이션 거품을 되돌리는 조정 국면도 배제할 수 없다. 규제 개혁, 금리 전망, 글로벌 무역정책 등 거시 변수가 맞물린 올 하반기 상장 러시는 투자자에게 기회이자 리스크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