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CEO들, 관세 불확실성에 맞서 공급망·가격 전략 전면 재편

무역 긴장 고조로 인해 세계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자사 운영 방식, 투자 지역, 소비자 판매 전략을 근본적으로 다시 쓰고 있다. 이번 분기 실적 발표 기간 CNBC가 알루미늄·항공우주·초콜릿·은행·통신·에너지 등 다양한 업종 CEO들과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관세는 더 이상 단순한 정치적 전술이 아니라 기업 리스크 관리의 전면에 등장했다.

2025년 7월 31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불확실한 무역 규정과 관세 재부상 속에서 경영진은 공장 위치부터 제품 가격 책정 방식까지 모든 것을 재고하고 있다. 과거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으로 불린 재고 최소화 모델은 ‘고객과 가까운 생산, 관세 예외 신청, 소비 트렌드 실시간 모니터링’이라는 보다 신중한 전략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번 실적 시즌은 환율 변동, 인플레이션, 정치적 불확실성이 겹친 가운데 진행됐으며, 그 결과 관세는 배경음이 아닌 핵심 리스크로 부상했다.

기업들이 관세 충격을 장기 경쟁력 위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노르웨이 알루미늄 업체 노르스크 하이드로의 트론드 올라프 크리스토퍼센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알루미늄의 경쟁력이 다른 소재 대비 약화될 가능성을 우려한다”며 “미국 관세 비용은 이미 고객에게 전가했지만, 포장재 고객들이 강철·플라스틱 대체재를 시험 중이라는 사실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단순 분기 실적 이슈가 아닌 산업 구조 변화의 경고 신호”라고 평가했다.


1. ‘현지에서 생산, 현지에서 판매’ 전략 가속

관세가 촉발한 가장 흔한 대응은 생산 거점의 지역화다. 스웨덴 통신장비업체 에릭슨의 보르예 에크홀름 CEO는 “2020년 가동을 시작한 북미 공장은 ‘Made in America’ 전략을 선제적으로 구현한 사례”라며 “해당 시설 덕분에 글로벌 정치 변수로부터 일정 부분 보호받고 있다”고 CNBC에 밝혔다.

볼보자동차의 하칸 사무엘손 CEO 역시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을 완전 가동하고 싶다”고 강조하며, 각 지역 사업부를 더 독립적으로 운영해 신속히 정책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 중이라고 말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파스칼 소리오 CEO도 제조 네트워크를 급격히 미국으로 이동하며 500억 달러 규모의 현지 투자 계획을 밝혔다. 그는 실적 발표 콜에서 “우리가 미국에 있어야 할 이유는 많다”고 말했다.

건설사 스칸스카의 안데르스 다니엘손 CEO는 “미국 빅테크(하이퍼스케일러)를 위한 유럽 데이터센터, 유럽 기업을 위한 미국 데이터센터를 각각 짓고 있다”며 ‘의도적 디커플링’과 ‘주권 기술(sovereign tech)’을 핵심 키워드로 제시했다.

2. 외교·로비·정책 모니터링의 중요성 확대

모든 기업이 생산지를 이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롤스로이스의 헬렌 매케이브 CFO는 “영국·미국 정부와 협력해 핵심 부품 관세 면제를 받았다”고 설명하며, 이제는 “단순히 관세 문제가 아니라 산업 거점을 마찰 최소화 방식으로 재배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무역 정책은 이제 사업 계획의 부속 항목이 아니라 핵심 축이다.”


3. 가격 인상 vs. 비용 흡수

선제 대응을 해도 모든 불확실성을 막을 수는 없다. 일부 기업은 비용을 자체 흡수하지만, 다수는 가격 인상 전략을 택하고 있다. 프리미엄 초콜릿 제조사 린트 & 슈프륑리는 올해 코코아 가격 급등(서아프리카 수출 제한이 촉발)과 관세 영향으로 15.8%의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아달베르트 레흐너 CEO는 “판매량(볼륨 믹스)은 4.6%만 감소했다”면서도 “미국 소비자들의 가격 민감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인정했다.

향료·향수 원료 기업 지보당의 질 앙드리에 CEO도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에서 조달하는 천연 원료에 관세가 붙는다”며 비슷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공장을 현지화해도 원재료가 해외에서 들어오면 무역 충격을 완전히 피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4. 예측 불가능성 확대와 금융 부문 파급

원자재와 직접 연결된 에너지 기업도 변동성을 체감하고 있다. 의 와엘 사완 CEO는 최근 유가 급등락을 두고 “실물 흐름이 아닌 종이 거래(paper trading) 중심의 변동성”이라며, 이런 상황이 투자 계획 및 가격 위험 관리의 난이도를 높인다고 말했다.

은행권 역시 관세를 ‘간접 리스크’로 인식하고 있다. 유니크레딧의 안드레아 오르첼 CEO는 “리스크 가격 책정 시 정책 예측 불가성을 모델링해야 한다”며, 무역 긴장·규제 급변·선거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5. 전문가 해설: ‘저스트 인 타임’에서 ‘저스트 인 케이스’로

※용어 설명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은 재고를 최소화해 비용을 절감하는 생산·물류 방식이다. 그러나 관세·공급망 교란이 잦아지자, 많은 기업이 ‘저스트 인 케이스(Just in Case)’, 즉 비상 상황에 대비해 일정 재고를 확보하고 생산지를 다변화하는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

※추가 용어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는 거대 클라우드·데이터센터 인프라 사업자를 가리키며, 대표적으로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구글 클라우드 등이 있다.


6. 향후 관전 포인트

2024~2025년 전 세계 주요 국가의 선거 일정과 더불어 각국 산업·탄소 정책이 관세 형태로 표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은 현지화(Localization), 다변화(Diversification), 적극적 로비(Lobbying), 가격 재조정(Repricing) 등을 동시에 추진하며 ‘다음 변곡점’을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관세는 단순히 비용 항목을 넘어 산업 구조와 소비자 선택까지 바꾸는 ‘게임 체인저’로 자리 잡았다. 알루미늄에서 강철로, 프리미엄 초콜릿에서 저가 간식으로의 전환은 이윤 이상의 시장 점유율 문제다. 글로벌 CEO들이 현지 생산 확대·가격 전략 정교화·정책 리스크 관리 강화에 사활을 거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