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로이터 – 10월 들어 글로벌 국채시장의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 과도한 차입 부담과 고착화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다소 누그러지면서 투자자들은 영국·독일·일본 국채 등 전통적 안전자산으로 재빠르게 복귀하고 있다.
2025년 10월 30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영국 정부채(길트·Gilts)가 반등세를 주도하고 있다. 올해 초 재정건전성 논란으로 큰 폭의 매도 압력을 받았던 길트는 10년물과 30년물 금리가 각각 약 30bp(basis points·1bp는 0.01%p) 하락하며 2023년 말 이후 최대 월간 낙폭을 기록할 전망이다.
독일과 정치적 난맥에 휩싸인 프랑스의 국채 수익률 역시 4월 이후 최대 월간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당시 미국의 관세 갈등이 격화되며 안전자산 선호가 부각됐으나, 이번에는 물가 압력 완화와 채권 공급 축소 기대가 배경으로 지목된다.
일본의 30년물 국채 수익률도 2024년 8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체제 출범 이후 제기됐던 재정 우려가 완화된 데 따른 것이다.
인플레이션 둔화·노동시장 약화가 핵심 변수
마이크 리델 (피델리티 인터내셔널 전략적 채권 총괄 매니저)은 “한두 달 전 예상했던 것만큼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았다는 점이 전 세계적 깜짝 요인”이라며 “이 덕분에 수익률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영국과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기대치를 하회하면서 영국은행(BoE) 금리 인하 가능성과 연준(Fed) 동결 내지 완화 지속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10월까지 3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노동시장도 약화 조짐을 보이고 있고, 재무장관 레이철 리브스가 재정 여력을 확대하기 위해 증세를 단행할 수 있다는 시각까지 겹치면서 길트에는 ‘완벽한 조합’이 형성됐다.” — 에블린 고메즈-리히티, 미즈호 멀티에셋 전략가
그녀는 특히 “장기물 공급 압력이 다소 완화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영국 정부가 30년물 등 장기물을 덜 발행하고, 영란은행이 보유채권 매각 시기를 단·중기물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 투자심리를 지지했다는 설명이다.
⚠️ 여전히 존재하는 경계 요인
피델리티의 리델 매니저는 “가격이 급등한 만큼 최근 일부 매수 포지션을 축소했다”고 밝혔다. 이는 단기 반등 이후 차익 실현 수요가 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일본의 경우, 가타야마 사츠키 신임 재무상이 장기물 발행 계획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며 안도감을 줬다. 실제로 지난주 30년물 입찰은 올해 드물게 강한 수요를 확인했다. 그럼에도 2025년 들어 30년물 금리는 여전히 연초 대비 80bp나 높아, 구조적 위험을 완전히 떨쳐낸 것은 아니란 지적이 나온다.
유럽 정치는 불확실성을 키우는 또 다른 변수다. 프랑스 사회당은 예산 수정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정부 불신임 투표를 추진하겠다고 압박 중이며, 영국도 11월 26일 예정된 예산안 발표가 레이철 리브스 재무장관에게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독일은 경기부양 패키지로 국채 발행량이 급증할 예정이고, 네덜란드는 연금 제도 개편으로 2026년부터 장기물 수요가 감소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이러한 구조적 수요 약화는 유럽 장기채권에 상시적인 매도 압력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
“인플레이션 보상 수준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장기물 비중을 늘리려면 수익률이 일정 기간 안정돼야 한다.” — 로스 허치슨, 취리히보험 유로존 시장전략 책임자
그는 “과거보다 구조적 수요가 줄어든 데다 여전히 인플레 위험에 대한 보상도 제한적”이라며 중장기적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용어·배경 설명
- 길트(Gilts)는 영국 정부가 발행하는 파운드화 국채를 통칭한다. 17세기 금 도금(gilt-edged) 증서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 bp(베이시스포인트)는 금리 변화를 나타내는 최소 단위로, 1bp = 0.01%p다. 예를 들어 30bp 하락은 금리가 0.30%p 떨어졌다는 의미다.
- 국채 수익률(yield)은 채권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가격 상승은 수익률 하락으로 나타난다.
- 안전자산(safe-haven)은 경제·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질 때 자금이 몰리는 자산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미국·독일·일본 국채, 금 등이 꼽힌다.
이번 10월 국채 랠리는 물가 안정을 바탕으로 형성됐으나, 구조적 재정 악화와 정치 불확실성이라는 그림자를 완전히 지운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 상승 탄력은 인정하되, 장기적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며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