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증시가 다시 한 번 역사적 고지에 올랐다. 주요 벤치마크 지수들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랠리(rally)’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의 강세장을 연출하고 있다.
2025년 9월 11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몇 주 동안 물가 상승률 둔화와 기업들의 예상치를 웃도는 실적 발표가 겹치면서 투자자들은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글로벌 주식시장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보여 주는 MSCI 올 컨트리 월드 인덱스(MSCI ACWI)는 네 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지수는 선진국과 신흥국을 합쳐 2,500개가 넘는 종목을 포괄하기 때문에 세계 투자 심리를 파악하는 데 가장 널리 사용된다.
미국의 S&P 500 지수는 지난 10일과 11일 이틀 연속 사상 최고가에 마감했으며, 일본 Nikkei 225, 한국 KOSPI, 싱가포르 Straits Times Index 또한 이번 주 들어 모두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연초까지만 해도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지정학적 리스크, 그리고 미·중 관세 갈등이 글로벌 성장세를 꺾을 수 있다는 우려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투자 심리가 180도 반전되었다.
말레이시아계 금융그룹 메이뱅크(Maybank)의 에디 로(Eddy Loh) 투자전략 총괄은 “올해 들어 지금까지의 성과는 아주 견조한 경제 성장과 무엇보다 튼튼한 기업 실적에 기반하고 있다”며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일본, 아시아 주요 시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지표 흐름도 주가 상승에 힘을 보태고 있다. 최근 발표된 고용지표는 노동시장 냉각 조짐을 시사했으며, 10일(현지시간) 발표된 8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달 대비 -0.1%로 예상치(+0.3%)를 크게 밑돌았다. 이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인터랙티브 브로커스(Interactive Brokers)의 호세 토레스(José Torres)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예상보다 훨씬 부진한 PPI가 디플레이션에 가까운 그림을 그렸다”면서 “애니멀 스피릿(animal spirits)이 솟구치고 있다”고 말했다.
애니멀 스피릿은 1936년 경제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스가 인간의 충동적·본능적 투자 심리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다. 시장 분위기가 들뜨면 합리적 분석 이상의 모멘텀이 형성된다는 뜻으로, 최근의 강세장을 요약하는 핵심 키워드로 쓰인다.
연방기금(FF) 금리 선물시장은 9월 17일 열리는 FOMC에서 25bp(bp는 basis point로 1bp=0.01%p) 인하가 단행될 가능성을 92%로 반영하고 있다(CME FedWatch 기준).
에디 로 총괄은 “우리는 올해 두 차례의 금리 인하를 기본 시나리오로 놓고 있으며, 9월 인하는 거의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스테이트 스트리트(State Street)의 마빈 로(Marvin Loh) 글로벌 매크로 수석전략가는 “경제가 아직 견고한 상황에서 Fed가 완화 사이클을 재개한다면, 그 자체가 위험자산 투자자에게는 훌륭한 토닉(tonic)이 될 것”이라며 “장기 금리가 어디에서 안착할지에 대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는 주식 등 다른 자산으로 자금을 이동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기술주 랠리 역시 힘을 보탰다. 오라클(Oracle)은 AI 관련 매출 가이던스를 대폭 상향 조정한 뒤 1992년 이후 최고의 일일 상승률을 기록하며 시가총액이 단 하루 만에 2,440억 달러 늘어난 9,220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전통적 클라우드 인프라 기업이 생성형 AI 수요로부터 얼마나 빠르게 수혜를 받을 수 있는지를 확인시켜 줌으로써 기술주 중심의 상승세가 단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강화했다.
투자자들은 이제 9월 13일 발표 예정인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토레스 이코노미스트는 “노동지표 하향 수정, 부진한 PPI, 그리고 얌전한 CPI가 삼각 편대(trio)를 이룬다면 Fed가 더 큰 폭의 인하에 나설 명분이 생길 것”이라며 “그 경우 주가는 또 한 번 신기록을 작성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에디 로 총괄은 “8월부터 발효된 미국의 대중(對中) 관세가 앞으로 몇 달간 보다 명확한 실물 경제 충격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투자 심리가 일부 조정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경고했다.
용어 설명
• 베이시스 포인트(basis point): 금리 변동 단위를 의미하며 1bp는 0.01%포인트이다.
• 토닉(tonic): 활력을 주는 자양제라는 뜻으로, 시장 심리를 북돋우는 요인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기자 전문 분석
필자는 현재 시장 랠리가 거시경제 펀더멘털 개선과 중앙은행 정책 완화 기대가 맞물린 결과라고 판단한다. 다만 지나친 레버리지 확대나 과도한 밸류에이션은 돌발 변동성을 키울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인이다. 투자자는 과거와 달리 단기 이벤트가 시장 전체를 흔드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포트폴리오 다각화와 리스크 관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