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원유 시장이 12일(현지시간) 급격한 조정세를 보였다.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1.30달러(-2.04%) 하락 마감했으며, 같은 달물 RBOB 가솔린 역시 -0.0287달러(-1.43%) 떨어졌다. 이러한 동반 약세는 글로벌 공급 과잉(glut) 우려가 재점화된 데 따른 것이다.
2025년 9월 12일, 나스닥닷컴이 인용한 바차트(Barchart) 보도에 따르면,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26년 세계 원유 공급 초과분 전망치를 하루 333만 배럴로 상향 조정한 것이 시장 심리를 급격히 냉각시켰다. 이는 불과 한 달 전 예상치보다 36만 배럴 늘어난 규모다. IEA는 특히 OPEC+가 단계적으로 감산을 해제할 계획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같은 날 발표된 미국 주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3년 9개월 만의 최고치로 치솟은 점도 유가를 압박했다. 노동시장 둔화는 소비와 산업 활동을 위축시켜 에너지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달러화가 약세를 보였고, S&P500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위험자산 선호심리가 유지된 덕분에 낙폭이 다소 제한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 공급 측 변수 — OPEC+·러시아·사우디
OPEC+는 10월부터 하루 13만7,000배럴의 증산에 합의했다. 이는 8~9월에 각각 54만7,000배럴씩 늘리기로 했던 방침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아울러 모두 166만 배럴에 달하는 잔여 감산 물량 재개 시점은 “시장 상황을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의 공급 차질도 변수다. 우크라이나군의 드론·미사일 공습 탓에 8월 1~27일 러시아 정유 처리량은 일 509만 배럴로, 3년 3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시장 일각에서는 “지속적 공습이 현실화될 경우 공급 부족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을 제기한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는 8일, 아시아 고객 대상 10월 선적분 전 등급 판매가격을 배럴당 1달러 인하한다고 공표했다. 당초 시장은 50센트 인하를 예상했으나, 실제 인하폭은 이를 두 배 상회했다. 이는 수요 부진 신호로 해석된다.
■ 지정학 리스크 — 유럽·중동에서 동시다발
“폴란드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드론을 격추했다.” ― 폴란드군, 9월 11일 발표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대(對)우크라이나 공격이 인접국 영토를 침범하며 긴장이 고조됐다. 중동 역시 불안하다. 이스라엘이 9일 카타르 도하에 있는 하마스(Hamas) 고위 인사를 겨냥해 공습을 감행하자, 카타르는 “국제법 위반”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중동은 세계 원유 공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핵심 지역이어서, 시장은 분쟁 확산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 재고·생산·시추 현황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9월 5일 기준 미국 원유 재고는 5년 평균 대비 3.2% 부족했으며, 가솔린 재고·중간유 재고도 각각 0.6%, 10.4% 낮았다. 같은 주 미국 원유 생산량은 1,349만5,000배럴로, 사상 최고치(2024년 12월 첫째 주·1,363만1,000배럴)에 근접했다.
석유 서비스업체 베이커휴스는 9월 5일 기준 미국 내 가동 중인 원유 시추기가 414기로 직전 주보다 2기 늘었다고 발표했다. 이는 2022년 12월 기록된 627기 대비 큰 폭 감소한 수준으로, 업계의 보수적 설비 투자를 방증한다.
■ 용어 해설
WTI(West Texas Intermediate)는 미국 텍사스 서부에서 생산되는 경질·저유황 원유로, 글로벌 원유 벤치마크 중 하나다.
RBOB(Reformulated Blendstock for Oxygenate Blending) 가솔린은 여름철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산소 첨가제로 혼합되기 전 단계의 가솔린 선물을 가리킨다.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는 석유수입국 중심의 에너지 정책 자문기구로, 매월 ‘오일 마켓 리포트’를 통해 수급 전망을 발표한다.
■ 기자 관점·전망
전문가들은 IEA의 공급 과잉 전망이 가시화되더라도, 지정학 리스크와 미국의 시추 활동 감소가 상쇄작용을 일으켜 단기 급락 이후 기술적 반등이 나타날 가능성을 제기한다. 또한 달러 박스권(달러 강세와 약세가 반복되는 100~107 인덱스 구간)에서 원유가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동결·인하 시점이 실물 수요보다 더 큰 방향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한편, 2026년 OPEC+의 완전한 감산 해제가 예정돼 있다는 점에서 중·장기적으로는 공급 팽창 요인이 우세하다. 다만, 2030년을 목표로 한 주요국의 탄소중립·재생에너지 전환 정책이 본격화되면 석유 수요 자체가 구조적으로 둔화할 수 있어, 전통 에너지 투자자는 변동성 확대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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