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 속에서 이틀 연속 내렸다. 8월 인도분 WTI(서부텍사스산중질유) 선물은 전일 대비 0.99달러(-1.47%) 하락 마감했고, 같은 월물 RBOB(개 Reformulated Blendstock for Oxygenate Blending) 가솔린 선물도 0.0300달러(-1.41%) 떨어져 2주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2025년 7월 23일, 나스닥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시장 참가자들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상호주의 관세 인상이 세계 경제 성장세를 둔화시키고 에너지 수요를 위축시킬 가능성에 주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 1일부로 미국과 무역협정을 체결하지 못한 국가에 대해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위험 자산 회피 심리가 강화됐고, 원유와 가솔린 가격 모두 약세 압력을 받았다.
미 달러화 가치는 이날 달러 인덱스(DXY) 기준 1.5주 만에 최저치로 밀려 유가 낙폭을 일부 제한했다. 통상 원유는 달러로 거래되기 때문에 달러화 약세는 달러 외 통화 보유국의 원유 구매 비용을 낮춰 수요를 지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글로벌 경기 지표 부진이 수요 둔화 전망 부채질
같은 날 발표된 미국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 7월 제조업지수는 -20으로, 전월 대비 12포인트 급락하며 11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시장 예상치(-2)를 크게 밑돌아 제조업 경기 둔화가 심화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유로존에서도 유럽중앙은행(ECB)이 공개한 분기별 은행대출설문(BLS)에서 2분기 기업 및 가계대출 수요가 여전히 부진한 것으로 나타나 투심을 악화시켰다.
“경기 선행지표가 흔들리면서 하반기 에너지 수요 둔화에 대한 시장의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 원유 수출 재개 계획…공급 확대 압력
공급 측면에서는 이라크 정부가 2023년 3월 이후 중단됐던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의 이라크~터키 송유관 수출을 재개하기로 승인했다. 쿠르드 측은 수출 재개 시 하루 23만 배럴(bpd)을 공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라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내 두 번째로 큰 산유국인 만큼 시장은 추가 공급 압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U, 러시아 석유 추가 제재로 가격 방어 효과
가격 하방 요인에도 불구하고 지난 18일 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러시아산 석유에 대해 추가 제재를 단행한 점은 유가에 일부 지지력을 제공했다. 이번 제재에는 러시아 석유를 취급하는 20개 추가 은행의 SWIFT 결제망 차단, 타국에서 정제된 러시아산 석유제품 제한, 그리고 러시아 섀도 플릿(제재 회피 선단) 소속 선박 105척 블랙리스트 등 조치가 포함됐다.
OPEC+ 증산 계획과 잠정 ‘동결’ 논의
반면 공급 과잉 우려는 여전히 상존한다. OPEC+는 7월 5일 회의에서 8월 1일부터 일일 54만8천 배럴 증산에 합의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향후 동 규모의 추가 증산이 뒤따를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는 2년간의 감산 조치를 완전히 되돌리기 위한 단계적 조치로, 2026년 9월까지 총 220만 bpd를 복원하는 일정이다.
다만 블룸버그 통신은 7월 10일 OPEC+가 9월 증산 이후 10월부터 증산 일정을 잠정 중단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미 상반기 전 세계 원유 재고가 일평균 100만 배럴씩 증가해 2025년 4분기에는 소비 대비 1.5% 공급 초과(글로벌 잉여)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선박 재고 감소·EIA 주간 전망이 단기 지지 요인
선박에 저장된 유휴 원유 재고 감소도 가격 방어에 긍정적이다. 조사기관 보텍사(Vortexa)는 7월 18일 기준, 7일 이상 움직이지 않은 부유식 저장·운송용 탱커의 전 세계 원유 재고가 전주 대비 14% 감소한 6,631만 배럴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시장 컨센서스에 따르면 23일(현지 시각) 발표될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주간 통계에서 원유 재고는 150만 배럴, 가솔린 재고는 20만 배럴 감소가 예상된다. 직전 주(7월 11일 기준)에는 원유 재고가 385만9천 배럴 감소해 3주 만에 첫 하락을 기록했고, 가솔린 재고는 339만9천 배럴, 디스틸레이트 재고는 417만3천 배럴 증가했다.
미국 원유 생산·시추기 동향
같은 기간 미국 원유 생산량은 주당 1만3,375,000 bpd로 전주 대비 0.1% 감소했으며, 사상 최고치(2024년 12월 첫째 주 1만3,631,000 bpd)에 근접한 수준을 유지했다. 베이커휴스에 따르면 7월 18일로 끝난 한 주 동안 가동 중인 미국 내 석유 시추기 수는 두 기 감소한 422기로, 3년 9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2022년 12월 627기 정점 대비 큰 폭으로 줄어든 수치다.
용어 설명
WTI는 미국 텍사스주 서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유로,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대표 선물 거래 대상이다. RBOB 가솔린은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산화제 첨가 기준을 충족한 무연 가솔린 블렌드스톡을 말하며, 여름철 대도시권에서 주로 소비된다. 달러 인덱스(DXY)는 6개 기축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지수화한 것으로, 원유와 같은 달러 표시 자산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편, 본 기사를 집필한 리치 애스플런드(Rich Asplund)는 기사 작성일 기준 해당 기사에서 언급된 어떤 종목에도 직·간접적인 투자 포지션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모든 정보는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제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