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D.C. 매장 외벽에 부착된 구찌(Gucci) 로고(2025년 5월 30일 촬영) ⓒKevin Carter | Getty Images News
프랑스 럭셔리 그룹 케어링(Kering)이 2분기에 시장 예상치를 밑도는 실적을 발표하면서, 구찌를 비롯한 핵심 브랜드의 경쟁력 회복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2025년 7월 29일, CN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케어링의 2분기 비교 기준(comparable basis)*1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 감소한 37억 유로(약 42억7,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금융정보업체 LSEG*2가 집계한 애널리스트 컨센서스 39억6,000만 유로를 하회한 수치다.
구찌 실적 직격탄
2분기 매출 중 거의 절반을 차지해 온 구찌의 판매액은 25% 급감해 14억6,000만 유로에 그쳤다. 구찌 부진은 그룹 전체 매출 감소를 가속화하며, 생 로랑(Saint Laurent)과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등 다른 브랜드 역시 동반 약세를 보였다.
프랑수아 앙리 피노(François-Henri Pinault) 케어링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보고된 숫자가 우리의 잠재력에 한참 못 미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지난 2년간 진행해 온 전사적 체질 개선이 향후 성장 단계의 견고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경제·지정학적 환경이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에서 케어링은 장기적이고 수익성 있는 성장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전략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별 시장 동향
그룹은 “일본 및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가장 부진했으며, 모든 시장에서 판매 위축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특히 중국 본토와 미국이라는 양대 핵심 시장의 소비 심리 악화가 매출 하락에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다.
시장조사업체 Third Bridge의 애널리스트 얀메이 탕(Yanmei Tang)은 “케어링은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핵심 럭셔리 시장이 동시에 위축되는 가혹한 현실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경영진 교체와 전략적 과제
케어링 주가는 연초 이후 8%가량 하락했다. 연이은 부진한 분기 실적 탓에 투자자들은 회사의 턴어라운드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이에 따라 케어링은 지난 6월, 자동차 업계 베테랑 루카 데 메오(Luca de Meo)를 그룹 CEO로 선임했다. 그의 공식 취임일은 9월 15일이다.
“[데 메오]는 사업 재편과 브랜드 재정비 분야에서 굵직한 실적을 남긴 인물”이라며, 바클레이스(Barclays) 유럽 럭셔리 담당 책임연구원 캐럴 마조(Carole Madjo)는 CNBC 인터뷰에서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업계는 데 메오 CEO가 직면할 과제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본다. 미국이 유럽연합(EU)산 수입품에 15%의 새로운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과 중국 내 소비 위축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숙제는 브랜드 이미지와 제품 ‘선망(desirability)’ 회복이다. 구찌는 2025년 3월 신임 아티스틱 디렉터로 데므나 그바살리아(Demna Gvasalia)를 임명했지만, 과거 소비자층과 신규 고객층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프란체스카 벨레티니(Francesca Bellettini) 부CEO는 “데므나의 구찌 비전을 엿볼 수 있는 첫 단서는 9월에, 본격 컬렉션은 2026년 1월 공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얀메이 탕 애널리스트는 “가격 인상 여력이 거의 무제한인 에르메스(Hermès)와 달리, 현재의 구찌·생 로랑은 그 정도의 가격 결정력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캐럴 마조 연구원 역시 “전례 없는 새로움을 선보여야만 구찌가 다시 위대해질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전문가 분석·전망
국내외 증권가는 향후 12~18개월이 케어링의 향방을 가를 ‘골든 타임’이 될 것으로 본다. 특히 구찌 라인의 신제품 판매 추이, 가격 전략, 중국 소비 회복 속도가 핵심 지표로 꼽힌다. 일부 애널리스트는 “데므나의 파격적 디자인 DNA가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Gen-Z)의 ‘디지털 네이티브 취향’에 얼마나 빠르게 침투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케어링은 최근 지속가능경영(ESG) 평가에서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매출 및 영업이익 감소에 따라 단기적 실적 압박을 피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실제로 2분기 영업이익(EBIT)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나, 매출 감소폭을 고려할 때 두 자릿수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용어 설명
*1 Comparable basis(비교 기준): 환율 변동, 인수·매각 등 구조적 변화를 제외하고 기존 사업만으로 단순 비교한 매출 성장률을 의미한다.
*2 LSEG: 런던증권거래소그룹(London Stock Exchange Group)의 약칭으로, Refinitiv 등 금융 데이터·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정보사다.
기자 해설
이번 실적은 고급 패션 선두주자로 군림해 온 케어링이 구조적 전환점에 서 있음을 시사한다. 전 세계 럭셔리 수요가 팬데믹 이후 리오프닝 특수를 마치고 정상화 단계에 접어드는 가운데, 소비자들은 새로운 브랜드 스토리와 독창적 경험을 요구하고 있다. 데므나가 구찌에서 선보일 첫 ‘신선함’이 기대되는 이유다.
그러나 혁신은 자칫 기존 고객층을 소외시킬 위험도 내포한다. 과거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 시대의 로맨틱·맥시멀리즘 코드를 사랑했던 충성 고객이 하이퍼 스트리트 감성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케어링이 강조해 온 “균형 잡힌 장기 성장”이라는 문구가 실질적으로 실행되려면, 디자인·브랜드·유통·가격 전략이 정교하게 맞물려야 할 것이다.
향후 구찌 컬렉션이 2026년 초 본격 출시된 뒤, 리테일 판매 지표와 디지털 채널의 소비자 참여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가 케어링 주가 방향성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