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한 정부가 알파벳 계열사 구글이 요청한 지도 원본 데이터 해외 반출 허가 여부를 또다시 보류했다. 이번 연기는 2007년과 2016년에 이어 세 번째다.
2025년 8월 8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국지원)은 구글의 신청에 대한 최종 결정을 60일 뒤로 미뤘다. 주요 이유는 ‘국가 안보 우려 해소 방안’을 구글이 제시할 시간을 더 주기 위해서라고 국토교통부는 설명했다.
“지도 데이터가 해외 서버로 이전될 경우 군·공항·통신시설 등 국가 기밀 시설의 정확한 좌표가 노출돼 국가안보에 치명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한국은 1950~1953년 한국전쟁 이후 휴전협정만 체결돼 북측과 법적 종전 상태가 아니므로, 보안 리스크를 ‘평시와 동일 선상’에서 다룰 수 없다는 논리를 유지하고 있다.
美 “비관세장벽” 공세…한미 정상회담 의제 오를까
미국 정부는 이번 사안을 ‘국경 간 데이터 이동 제한’이라는 비관세장벽(Non-Tariff Barrier)으로 규정해 왔다. 워싱턴은 지난해 7월 타결된 한·미 통상협의 직후부터 구글·애플 지도 서비스의 한국 내 기능 제한을 지속적으로 거론하며 “미국 IT 기업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양국은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 개최를 조율 중이다. 그러나 지도 데이터 문제가 공식 의제로 상정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한국 측 협상 대표 김용범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지도·농업 시장 개방과 같은 민감 사안에 대해 추가 양보 계획은 없다”고 지난달 밝힌 바 있다.
구글 “보안 검증 이미 완료…관광객 불편 커”
구글 측은 “이미 정부 기관 보안 심사를 통과한 데이터”라며 “노출 우려 시설은 위성·항공사진에도 공개돼 있으며, 현행법상 제공 가능한 수준의 해상도를 준수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회사는 “추가 보안 요구가 있다면 적극 협의하겠다”며 ‘정부 승인 받은 국내 파트너로부터 블러(blur) 처리된 이미지 구매’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구글은 총체적 제한으로 인해 한국 방문 외국인 관광객이 길찾기·대중교통·내비게이션 서비스를 충분히 이용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구글맵이 국내에서 ‘턴바이턴(turn-by-turn)’ 내비게이션 기능을 제공하지 못해, 사용자는 타사 앱으로 갈아타거나 영문 서비스가 없는 로컬 앱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문가 시각: ‘디지털 주권’ vs ‘글로벌 표준’
디지털 주권은 국가가 자국 내 데이터를 통제하고 보호할 권리를 뜻한다. 반면 글로벌 표준에선 데이터가 국경을 초월해 자유롭게 이동해야 혁신과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번 사안은 양 가치가 정면충돌하는 전형적 사례다.
학계는 “공간정보의 군사·경제적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각국은 지리정보를 ‘디지털 영토’로 간주한다”면서도, “지도 정밀도가 떨어지면 자율주행·물류·AR(증강현실) 산업 발전이 지연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지적한다.
용어 설명
① 비관세장벽: 관세 외의 규제로 무역·투자를 제한하는 모든 제도. 데이터 현지화 요구, 기술 표준 차별, 행정 절차 지연 등이 포함된다.
② 국경 간 데이터 이동(Cross-Border Data Flow): 개인·기업 정보가 국가 경계를 넘어 전송·저장·처리되는 것.
③ 블러 처리(Blur): 민감 장소를 흐릿하게 가공해 식별을 어렵게 만드는 방식.
향후 일정 및 관전 포인트
국토교통부는 60일 내 구글이 제시할 안보 대책의 타당성을 검토한 뒤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만약 허가가 떨어질 경우, 애플을 포함한 다른 글로벌 사업자도 유사 신청을 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세 번째 ‘불허’가 내려지면, 미 정부가 디지털 통상규범을 근거로 공식 분쟁 절차를 개시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사안은 국가안보·산업경쟁력·통상압력이 복합적으로 얽힌 지정학적·경제적 이슈다. 향후 협상 결과가 글로벌 빅테크와 주권국가 간 데이터 주도권 갈등의 선례가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