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연이어 단행한 고율 관세에도 불구하고 월마트(Walmart), 홈디포(Home Depot) 등 미국 대표 소매업체들의 최근 분기 실적은 예상보다 견조했다. 기업들은 비용 상승을 창의적으로 흡수하며 가격 인상을 최소화했고, 소비자 지출 역시 아직까지는 큰 타격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 8월 22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대형 리테일러들은 관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원가 절감, 조기 물량 확보, 글로벌 소싱 다변화 등 복합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관세(일반적으로 국제무역에서 수입품에 부과되는 세금)를 피하거나 완화하기 위해 ‘프런트 로딩(front-loading)’이라 불리는 방식—관세 발효 전에 물건을 미리 들여와 재고를 쌓는 전략—도 적극 활용됐다.
이번 분기 실적 발표에서 나타난 핵심 메시지는 △소비자 지출의 지속성 △관세 영향의 제한적 규모 △브랜드 경쟁력 및 신규 수익원 확보의 중요성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소비자 지출, ‘선택적’이지만 여전히 견조
월마트 최고재무책임자(CFO) 존 데이비드 레이니는 인터뷰에서 “일부 가격을 올렸지만 다른 품목에서는 가격을 동결하거나 오히려 할인 폭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반적인 장바구니 관점에서 가격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월마트는 2분기 여성 의류·신발 등 패션 부문 매출이 가속화됐다고 밝혔다. 핸드백 브랜드 코치(Coach)를 보유한 테이퍼스트리(Tapestry)도 695달러짜리 ‘키스락(Kisslock) 라지 백’이 출시 수분 만에 완판됐다고 전했다. 반면 홈디포·로우스(Lowe’s)는 7월 들어 매출이 개선됐지만 고금리 여파로 대규모 주택 리모델링 수요 회복을 아직 ‘확신하기 어렵다’고 인정했다.
“관세 영향은 생각보다 완화되고 있지만, 중·저소득층 소비자는 가격 인상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 더그 맥밀런 월마트 CEO
크록스(Crocs)의 앤드루 리스 CEO는 “하반기 배경이 우려스럽다”며 리테일 주문이 약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소비자가 극도로 조심스러워 매장 방문 자체가 줄었다”고 말했다.
2. 관세 충격, 기업별 ‘완충 전략’으로 희석
소매업체들은 관세 비용을 낮추기 위해 제조 거점 다변화, 가격 인상 시기 분산, 신상품 출시가 인상 등 전술을 혼합해 사용하고 있다. 예컨대 가전·미용기기를 판매하는 샤크닌자(Sharkninja)는 신제품 ‘크라이오글로(CryoGlow)’ 피부관리 마스크 출시 가격을 당초 299달러에서 349달러로 상향하며 마진을 방어했다.
홈디포 CFO 리처드 맥페일은 “분기 중 판매된 수입 제품 상당수가 관세 적용 이전에 도착한 물량”이라고 밝혔다. 회사는 연말까지 ‘단일 국가 의존도 10% 이하’ 목표를 세우며 공급망 리스크를 분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관세 청구서는 계속 불어난다. 테이퍼스트리는 새 회계연도에 1억6천만 달러의 추가 관세 비용이 발생해 수익성을 훼손할 것이라고 예고했고, 월마트 역시 하반기까지 비용 상승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3. 브랜드 파워·신규 수익원이 방패
브랜드 충성도와 다각화된 수익 구조는 관세 불확실성을 견디는 핵심 요인으로 부각됐다. 홈디포와 로우스는 전문 시공업자(프로 고객) 대상 매출 비중을 확대하기 위해 올해에만 2건의 M&A를 단행했다. 로우스는 88억 달러에 ‘파운데이션 빌딩 머티리얼즈(Foundation Building Materials)’를 인수했고, 홈디포는 지난해 최대 규모인 SRS 디스트리뷰션을 사들였다.
월마트는 광고·마켓플레이스 등 ‘비(非)상품’ 부문 덕에 실적이 안정적이다. 글로벌 광고 매출은 전년 대비 46% 급증했고, 마켓플레이스(제3자 판매자 중개) 매출도 17% 늘었다. 레이니 CFO는 “우리는 더 이상 전통적인 오프라인 유통사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자평했다.
견고한 브랜드는 가격 인상에도 수요를 유지했다. 버켄스탁(Birkenstock)은 7월 1일 관세 부담을 이유로 가격을 올렸지만 “주문 취소나 저항은 없었다”고 밝혔으며, 코치는 평균 판매가 상승과 할인 축소로 ‘관세 흡수 능력’을 키웠다.
반면 성장이 부진한 브랜드는 벤더(공급업체)와의 협상력이 약해 관세·공급망 비용 전가가 어려웠다는 분석이다. 타깃(Target)은 주문 취소 비용으로 마진이 악화됐고, 크록스는 하반기 주문량을 줄이며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다. 크록스는 재고를 교체하기 위해 헤이듀드(Heydude) 브랜드 구형 제품을 회수하고 신상품으로 교체하는 이례적 조치까지 단행했다.
알아두면 좋은 용어
ㆍ관세(Tariff) : 수입품에 정부가 부과하는 세금으로, 자국 산업 보호 또는 교역 상대국 압박 수단으로 활용된다.
ㆍ프라이빗 라벨(Private Label) : 유통업체가 자체 상표로 판매하는 상품군. 제조·브랜드 비용이 낮아 일반 브랜드 대비 저렴하다.
ㆍ프런트 로딩(Front-Loading) : 관세 인상 전에 물량을 선(先)반입해 비용 상승을 회피하는 전략.
요약하면, 관세 충격은 ‘확실히 존재’하지만 ‘예상만큼 크지 않다.’ 대형 소매업체들은 가격·공급망·사업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치밀한 완충책을 마련해 소비자 지출 둔화를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