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 그룹(이하 골드만삭스)이 미국 규제당국에 대규모 회사채 포트폴리오 거래의 공시 시점을 늦춰 달라고 공식 건의했다. 은행이 내부적으로 작성한 화이트페이퍼가 로이터에 입수되면서 주요 내용이 공개됐다.
2025년 9월 10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투자자 대신 회사채를 매매하는 대형 유동성 공급자들이 거래 위험을 완전히 헤지하기도 전에 거래 세부 사항이 드러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현행 규정은 거래 체결 후 15분 이내에 모든 세부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어, 대규모 블록 거래가 시장 가격을 왜곡하거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은행 측은 주장한다.
현재 미국 금융산업규제국(FINRA)은 투자등급·하이일드 채권(investment-grade & high-yield)의 2차 시장 거래를 15분 내 TRACE(Trade Reporting and Compliance Engine) 시스템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TRACE는 2002년 도입된 사후 보고 체계로,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다.
골드만삭스의 구체적 제안
“2억5천만 달러(약 3,300억 원) 이상을 한꺼번에 거래하는 포트폴리오 거래는 15분 내 공시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 골드만삭스 화이트페이퍼
골드만삭스가 제시한 단계적 공시 지연안은 다음과 같다.
① $250M 초과 ~ $500M 이하 : 당일 장 마감 전까지 보고.
② $500M 초과 : T+1(거래 다음 영업일) 정산이 완료되는 시점까지 보고 연기.
③ $250M 이하 단일·포트폴리오 거래 : 현행 15분 내 보고 계속 유지.
은행은 “전체 회사채 거래 중 약 0.5%만이 2억5천만 달러를 넘는다”면서, 시장 투명성엔 큰 영향 없이 대형 블록 거래의 리스크 관리만 개선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트폴리오 트레이딩의 부상 배경
포트폴리오 트레이딩은 2018년 도입돼, 다수의 개별 회사채를 한 번에 묶어 거래하는 방식으로 효율을 끌어올렸다. 전자(電子)거래 비중이 확대되며 현재 미국 투자등급 채권 거래량의 50% 이상이 전자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또한 채권 ETF 일평균 거래대금은 104억 달러에 달해, 유동성을 대체적으로 개선했다.
이 같은 변화는 유동성이 낮은 회사채까지 묶어 거래할 수 있다는 장점을 제공해 시장 구조를 재편했다. 그러나 대규모 포트폴리오 거래의 정보 유출(leakage)이 가격 개선 여력과 딜러의 헤징 능력을 제약한다는 지적도 동시에 제기돼 왔다.
규제 환경과 잠재적 영향
어떤 규정 변경도 FINRA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승인을 거쳐야 한다. 골드만삭스는 이미 로비를 진행했는지 여부에 대해선 언급을 거절했다.
시장 참가자들은 골드만삭스의 안이 채택될 경우, 거래 정보 투명성과 가격 효율성 사이의 균형점이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본다. 대형 자산운용사 PGIM Fixed Income의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 그레고리 피터스(Gregory Peters)는 “포트폴리오 트레이딩은 다양한 시장 환경에서 유동성을 확보하는 ‘게임 체인저’”라며, 공시 지연이 투자자에게 더 나은 성과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해설: 용어•제도 이해
TRACE: FINRA가 운영하는 거래 보고 및 규정 준수 엔진으로, 딜러가 체결한 채권 거래를 시장에 실시간 공개한다.
T+1: ‘Transaction date + 1 business day’의 약자로, 거래 체결일 다음 영업일에 결제가 이뤄지는 방식이다. 2024년 미 증시 결제주기가 T+1로 단축되며, 채권 시장도 점진적으로 도입 중이다.
기자 관전평
골드만삭스의 제안은 투명성 저하와 유동성 공급 강화라는 양날의 검을 동시에 겨눌 가능성이 있다. 공시 지연이 허용되면, 딜러들이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며 헤지를 완료할 시간을 벌 수 있으나, 정보 비대칭이 개인 투자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한다. 거래 규모별·상품 특성별 차등 공시가 글로벌 채권 시장에서 이미 일부 적용되는 사례가 있는 만큼, 미국 규제당국의 최종 선택이 국제 표준 형성에 중요한 선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