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원 가속 속 AI의 역할… 기업이 말하지 않는 ‘자동화 해고’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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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식시장이 역사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거시경제 지표도 탄탄한 가운데 대규모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layoff)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해고 사유를 인공지능(AI) 도입과 직접적으로 연관 짓는 경우가 드물다. 대신 ‘재편성’, ‘구조조정’, ‘최적화’라는 애매한 용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2025년 7월 20일, CN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IBM과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Klarna)는 이례적으로 AI가 인력 감축에 미친 영향을 공개한 소수 사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기업이 AI 기반 자동화를 추진하며 조용히 인력을 줄이고 있다고 진단한다.
IBM·클라르나, 드러난 빙산의 일각
IBM의 아르빈드 크리슈나(Arvind Krishna) 최고경영자(CEO)는 2025년 5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인사(HR) 부문 직원 200명이 AI 챗봇으로 대체됐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동시에 “다른 영역에 재투자하며 전체 인력은 오히려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스웨덴계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의 세바스티안 시미앗코프스키(Sebastian Siemiatkowski) CEO 역시 CNBC ‘파워런치’와의 인터뷰에서 “직원 수가 5,000명에서 3,000명으로 40% 가까이 감소했다”며 AI 전환 효과를 공개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링크드인 구인공고 추이를 보면 우리 인력이 빠르게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AI 감원, 공개 대신 완곡어법 사용”
“우리가 보는 것은 ‘AI 기반 인력 재편’이지만, 기업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 하버드대 크리스틴 인지(Christine Inge) 교수
하버드대학교 전문·임원 교육 강사인 인지는 “대부분 기업이 ‘AI로 사람을 대체한다’는 사실을 공개하면 내부 사기, 대중 여론, 규제 리스크가 동시에 불거질 것을 우려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효율성 향상’, ‘조직 최적화’ 등 모호한 표현을 ‘방패막이’에 비유했다.
미국 전역에 4만 명 규모 인력을 파견하는 AtWork Group의 제이슨 레버런트(Jason Leverant) 최고운영책임자(COO)는 “AI 대규모 도입 시점과 해고 시점이 기묘하게 겹친다”며 “이를 단순 경영 전략으로 포장하는 사례가 잦다”고 말했다.
재무 실적은 호조… ‘비용 절감형’ 해고의 진짜 이유
방산·엔지니어링 기업 파슨스(Parsons Corporation)의 사이버보안·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디렉터 캔디스 스카버러(Candice Scarborough)는 “최근 분기 실적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해고가 단행되는 것은 대형 AI 시스템 도입 시점과 절묘하게 맞물린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결국 소프트웨어가 직원들을 대체하지만, 애매한 용어가 불만과 ‘AI 역풍’을 회피하는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10%’가 남긴 공백과 위험관리
IT 아웃소싱 기업 Connext Global의 테일러 고처(Taylor Goucher) 부사장은 “AI가 업무 프로세스의 70~90%를 자동화하더라도 품질관리(QA), 판단, 예외 처리 등 ‘마지막 10%’는 인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초기 도입 단계에서 ‘휴먼+AI’ 하이브리드 모델이 합리적이지만, 이미 해고가 이뤄진 뒤에는 해외 아웃소싱으로 메우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AI를 과대평가한 나머지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결국 추가 비용을 들여 재채용하거나 외주를 확대해야 하는 ‘되돌림 효과’가 발생한다고 경고한다.
‘1099 노동자’가 먼저 맞닥뜨린 현실
‘1099 노동자’란 미국 세법 양식 1099를 통해 수입을 신고하는 독립계약자·프리랜서를 가리킨다. 정규직과 달리 고용 안정성이 낮아, AI 대체가 가장 먼저 통보된 집단이기도 하다. 인지 교수는 “카피라이터·그래픽 디자이너·영상 편집자 등 프리랜서가 2~3년 전부터 직접적으로 ‘AI가 당신 일을 대신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대표적 사례로 듀오링고(Duolingo)가 언급된다. 올해 초 루이스 본 안(Luis von Ahn) CEO가 “계약직을 AI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가 커뮤니티 반발에 직면해 일부 계획을 철회했다. 이 사건은 ‘AI 해고’ 발표가 초래할 대중 반응을 기업들에 각인시켰다.
노동시장 전망과 거시지표
미국 실업률은 2025년 6월 4.1%(트레이딩이코노믹스 집계 기준)까지 하락해 전반적 노동시장 안정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세계경제포럼(WEF)의 ‘2025 미래 일자리 보고서’는 향후 5년 안에 전 세계 고용주의 41%가 AI 자동화를 이유로 인력을 줄일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또, 앤트로픽(Anthropic) CEO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는 “생성형 AI가 초급 사무직의 최대 절반을 대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AI 역할이 명백해지는 임계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지 교수는 “그때가 되면 해고 규모가 워낙 클 것이기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적응과 역량 전환뿐”이라고 말했다.
용어 해설 및 추가 맥락
재편성(Reorganization)·구조조정(Restructuring)·최적화(Optimization)는 직무 자체를 없애거나 변경하는 과정을 표현할 때 자주 쓰이는 경영학 용어다. 최근 기업들은 AI가 실질적으로 업무를 대신하더라도, 이 같은 중립적 표현으로 부담을 완화하고 있다.
AI 역풍(AI Backlash)은 인공지능으로 인한 해고·윤리 문제에 반발하는 사회적 움직임을 말한다. 기업은 주가·브랜드 이미지를 고려해 이를 최소화하려고 한다.
전문가 시각
기술·노동시장 분석가로서 기자는 “AI가 100% 인간을 대체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90% 자동화’만으로도 기업이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으므로, ‘부분 자동화→전면 구조조정’의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관건은 남은 10%의 가치를 증명할 인간 고유 역량을 어떻게 강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독자들은 AI 도입이 직종별로 어떤 영향(대체·보완)을 미칠지 예의주시하며, 향후 3~5년간 재교육·스킬 업그레이드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