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C ‘인사이드 웰스(Inside Wealth)’ 뉴스레터에 처음 실린 이번 기사는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기자가 고액자산가와 소비자를 대상으로 매주 발송하는 분석 리포트 중 하나다. 글에서는 초부유층(ultra-high-net-worth, UHNW)이 운용하는 가족 오피스(family office)의 거래 동향과 ‘관망 심리’가 투자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 조명한다.
2025년 7월 24일, CN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가족 오피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중국 관세 정책과 같은 거시 환경의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대규모 투자를 미루고 있다. 이로 인해 2025년 상반기(1~6월) 동안 가족 오피스가 단행한 직접 투자(direct investment) 건수는 총 375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 감소했다는 집계가 핀트렉스(Fintrx)가 CNBC에 단독 제공한 데이터에서 확인됐다.
투자 감소 폭은 기술(technology)과 헬스케어·생명과학(health care & life sciences) 등 2024~2025년 가장 인기 있던 섹터를 포함해 전 분야에 걸쳐 나타났다.
“유일하게 예외를 보인 영역은 인공지능(AI) 관련 기업으로, 해당 분야 직접 투자는 55건에서 71건으로 증가했다.”
PwC의 미국·글로벌 가족 오피스 부문 리더인 조너선 플랙(Jonathan Flack) 파트너는 가족 오피스가 AI에 대해 ‘선별적(selective)’ 접근을 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첨단 기술 자체에 베팅하기보다는 데이터 센터, 서버 냉각 시설, 전력 인프라 등 ‘픽스 앤 쇼블스(picks-and-shovels)’—금광에서 실제 금보다 곡괭이·삽을 파는 장비에 투자해 확실한 수익을 노리던 전략—에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플랙 파트너는 또 “미국 의료 시스템 전반의 수요와 AI 기반 바이오테크 스타트업 부상 덕분에 헬스케어 분야가 비교적 견고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의료 진단(medical diagnostics) 스타트업의 잠재력을 언급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증세·지출 법안(tax-and-spending law)이 농촌 의료기관에 재정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효율적 진단 솔루션 수요가 확대될 것이란 전망을 제시했다.
가족 오피스 전문 변호사인 빅키 오데트(Vicki Odette) 헤인스 분(Haynes Boone) 파트너 역시 “벤처 캐피털(VC) 딜에 대한 심사가 훨씬 까다로워졌다”고 전했다. ‘엑싯(exit) — 투자금 회수’ 시장이 느려지면서 재투입할 자본이 줄어든 탓이다. 오데트 변호사는 “클라이언트들이 단기간 내 수익 경로가 명확한 딜만 찾으려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모두가 관망만 하는 것은 아니다. 유동성(liquidity)을 갈망하는 기관투자가가 늘어나면서 세컨더리 펀드(secondary funds)가 각광받고 있으며, 기회를 노리는 가족 오피스가 해당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것이 오데트 변호사의 관측이다. 세컨더리 펀드는 기존 펀드 지분을 할인 가격에 매입해 만기 전에 투자금을 회수하려는 투자자에게 현금을 제공하고, 신규 투자자는 잠재적 수익을 노리는 구조다.
향후 전망
플랙 파트너는 2025년 하반기에 거래가 “소폭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가족 오피스가 여전히 미투자 자본(undeployed capital)을 상당량 보유 중이므로 연말이 다가오면 반드시 일부는 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오데트 변호사는 ‘관세 정책에 대한 확실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미국 기업 투자금이 눈에 띄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특기할 만한 흐름은 국제 분산이다. “최근에는 미국 내 가계 자산가조차 해외 투자를 선호하고 있다”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국경을 넘는 패밀리 오피스 신디케이트(cross-border syndicates) 형성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오데트 변호사는 전했다. 이들 신디케이트는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미국 외 지역에서 ‘알파(alpha, 초과수익)’를 추구하는 거래를 발굴하고 있다.
용어·개념 해설
가족 오피스(family office)란 고액자산가·기업가 가문이 자신의 자산을 1세대에서 2세대, 3세대로 안전하게 이전하고 장기적으로 불리기 위해 설립한 사모 전문 운용조직이다. 일반 자산운용사와 달리 투자 기간이 수십 년에 달할 수 있고, 세대 간 부의 보존·증식이 핵심 목표다.
픽스 앤 쇼블스 전략(picks & shovels strategy)은 특정 유망 산업의 ‘주인공’이 아닌 인프라 공급자에 투자해 안정적 수익을 확보하는 접근법이다. 19세기 골드러시 때 실제 금보다 삽·곡괭이를 만든 회사가 더 많은 돈을 벌었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세컨더리 펀드(secondary fund)는 사모펀드(PE)나 벤처펀드 지분을 중도에 사고팔 수 있도록 설계된 시장이다. 초기 투자자가 자금 회수를 서두를 때 할인(discount)된 가격으로 매입한 뒤, 기초 자산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 때까지 보유해 차익을 실현하는 구조다.
엑싯(exit)은 스타트업 투자 이후 지분 매각이나 상장, 인수합병 등을 통해 투자금을 현금화하는 과정이다. 최근 IPO 시장 침체와 금리 상승이 겹치면서 엑싯이 지연되고, 자본 회수 속도가 떨어진 점이 가족 오피스의 재투자 여력에 영향을 주고 있다.
전문가 진단 및 시사점
① 관세 불확실성이 투자 심리를 직접적으로 위축시키고 있다는 점은, 거시 정책 변화가 사모시장까지 파급됨을 의미한다.
② AI 인프라 투자가 여전히 ‘실물 자산’의 매력을 증명하면서도 기술 투자 지식이 부족한 가문의 리스크를 줄여준다는 전략적 메시지를 던진다.
③ 해외 분산 가속은 자본이 국경을 초월해 규제·정치 리스크 헷지를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국내 스타트업에게는 자본 유치 경쟁이 심화될 수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결국 2025년 하반기 시장 반등 여부는 정책 가이드라인 명확화, 엑싯 창구 회복, 그리고 대체 자본 시장(secondary market) 유동성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가족 오피스의 ‘관망 후 단숨 집행’ 패턴을 감안하면, 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순간 거래량이 급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