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발(Reuters) — 영국은행(BoE) 총재 앤드루 베일리는 22일 하원 재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규제가 기업의 목을 조르는 부츠”라는 레이첼 리브스 재무장관의 표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그는 영국 금융 시스템의 기본적 안정성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며, 특히 은행을 소비자금융 부문과 투자은행 부문으로 분리하는 링펜싱(ring-fencing) 규정은 핵심적 장치라고 강조했다.
2025년 7월 22일, 인베스팅닷컴·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베일리 총재는 “세부 규정 완화는 검토할 수 있으나, 금융위기 이후 도입된 대원칙은 흔들릴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예로서 소득 요건과 같은 주택담보대출 승인 기준 조정에는 열려 있지만, 건전성 체계를 뒷받침하는 구조적 규제까지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 링펜싱 규정이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영국은 거래·투자 부문의 고위험 자산이 소비자 예금에 충격을 주지 못하도록, 은행 내 소매금융(리테일) 부문과 투자은행 부문을 칸막이로 분리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를 링펜싱 제도라고 부르며, 비상사태 시 소비자 예금 보호 및 파산 처리 용이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다.
정책 배경과 정치적 충돌
베일리 총재는 “영국이 해외보다 더 강도 높은 규제를 적용한다는 일부 금융사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수준을 유지할 뿐”이라고 못 박았다. 반면, 리브스 장관은 7월 초 맨션 하우스 연설에서 링펜싱을 포함한 규제 개편을 예고하며 “의미 있는 개혁”으로 성장 둔화를 타파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청문회에서 한 의원이 “규제가 기업들의 목을 누르는 부츠”라는 표현을 인용하며 의견을 묻자, 베일리는 “그런 표현은 쓰지 않는다”며 “기본적 금융안정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단호히 답했다.
이날 증언에는 베일리 총재 외에도 금융정책위원회(FPC) 위원인 랜들 크로즈너 전 미 연준 이사와 캐럴린 윌킨스 전 캐나다 중앙은행 부총재가 동석했다. 크로즈너 위원은 “현 단계에서 성장을 위한 규제 완화와 금융안정 목표가 충돌한다고 보이진 않는다”면서도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 연기금 의무투자 논란
베일리 총재는 정부가 연기금에 대해 인프라 등 비유동성 자산을 강제 편입하도록 요구할 가능성에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투자시장은 자율성이 보장될 때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한다”며 “강제 배분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어 우려된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향후 연금제도 개혁이 진행되고도 업계가 자발적 다변화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정부·규제당국이 도덕적 설득력(moral suasion)을 행사할 여지는 크다”고 여지를 남겼다. 리브스 장관도 최근 연설에서 새 연금법이 강제 권한을 명시하되, 이를 실제로 발동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 국채 금리 상승 “글로벌 공통 현상”
최근 30년 만기 영국 국채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자, 일부 시장 참가자들은 국가 재무건전성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베일리 총재는 “수익률 곡선이 가팔라지는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나타난다”며 “영국만의 특이 현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유럽 역시 장기물 금리가 더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덧붙이며, 배경으로는 관세 정책 변화에 따른 글로벌 교역 불확실성과 확대되는 재정적자 우려를 꼽았다. 베일리는 특정 국가를 언급하지 않았으나, 원문 기사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과 감세로 인한 부채 확대 전망이 사례로 제시됐다.
※ 기사 작성 시점 기준 미국 대통령
전문가 시각과 향후 전망
“금융안정과 성장 사이 균형을 찾기는 늘 어려운 숙제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의 교훈을 잊는 순간, 더 큰 비용이 돌아온다.” — 영국 시티 소재 대형 자산운용사 리스크 총괄(익명)
편집자 관점에서 보건대, 베일리 총재의 발언은 투자은행 및 대형 시중은행이 요구해 온 규제 완화 논의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크다. 다만 정부가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부분적 규제 조정을 압박하면, 금융당국은 소비자 보호를 전제로 선별적 완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협의 과정에서 링펜싱 완화 범위·연기금 투자 다변화의 세부 기준이 향후 금융시장 변동성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장기채 금리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금융기관의 자본·유동성 규제 비율까지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이는 다시 금융안정 대 성장 촉진이라는 오래된 논쟁을 재점화할 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