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최고 의료·과학 책임자(Chief Medical and Science Officer)로 일해 온 비나이 프라사드(Vinay Prasad) 박사가 전격 사임했다. 프라사드 박사는 동시에 보건복지부(HHS)가 감독하는 FDA 산하 생물의약품 평가·연구센터(CBER) 소장직에서도 물러났다.
2025년 7월 30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HHS 대변인은 이메일 성명을 통해 “프라사드 박사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FDA가 수행하는 훌륭한 업무에 ‘잡음’이 되고 싶지 않았다”면서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라고 밝혔다.
“우리는 그가 FDA 재직 기간 동안 이뤄낸 많은 중요한 개혁에 감사한다”
라는 HHS 측의 짧지만 의미심장한 코멘트가 뒤따랐다.
STAT News가 먼저 전한 ‘전격 사임’ 배경
전문 의학 매체 STAT News는 앞서 프라사드 박사의 퇴진 사실을 단독 보도하며, 최근 FDA가 듀센형 근이영양증 치료용 유전자 치료제 ‘엘레비디스(Elevidys)’를 둘러싸고 내린 논란의 결정이 사임을 촉발했다고 전했다. 해당 치료제는 사렙타 테라퓨틱스(Sarepta Therapeutics)가 개발했으며, 일부 투여 환자의 사망 사례가 보고되자 FDA는 출하를 일시 중단했다가 이틀 전(29일) 전격적으로 중단 조치를 해제했다.
FDA 안팎에서는 출하 중단→해제라는 급격한 정책 변동이 규제기관의 결정이 일관성을 잃고 있다는 신호로 읽히고 있다. 특히 프라사드 박사가 내부적으로 어떤 입장을 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그는 과거에도 ‘근거 기반 의학’을 강조하며 FDA 수장의 정책 방향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온 인물이다.
5월에는 CBER 소장, 6월에는 최고 책임자…두 달 만에 빈자리
올해 5월 FDA는 종양내과 전문의 출신의 프라사드 박사를 CBER 소장에 임명하며 “규제 과학의 혁신을 주도할 적임자”라고 치켜세웠다. 이어 6월 내부 메모를 통해 그를 FDA 전체의 최고 의료·과학 책임자로 승진시켰다. 그러나 정식 취임 두 달 만에 사임이 공식화되면서 FDA 조직 개편에는 불가피한 공백이 생겼다.
프라사드 박사는 팬데믹 시기 코로나19 백신과 방역 조치(마스크 의무화·접종 의무화 등)를 둘러싸고 FDA와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그는 “근거가 약하거나 불완전한 결정을 규제기관이 섣불리 내리는 것은 공중보건 신뢰를 손상시킨다”는 견해를 여러 학술지와 방송 인터뷰에서 강조해 왔다.
FDA 내부 불확실성 고조…영향과 전망
FDA는 지금도 신약·의료기기 승인 심사에서 글로벌 기준을 사실상 좌우하는 기관이다. 최고 의료·과학 책임자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최종 승인·거절 권고에 핵심 자문을 제공하는 직책이다. 불과 60여 일 만에 공석이 된 만큼, 듀센 근이영양증 치료제뿐 아니라 대기 중인 유전자 치료제, mRNA 백신, AI 진단 기기 등 차세대 헬스케어 제품 심사 일정이 지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HHS는 “FDA의 핵심 임무와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즉각 후임 인선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의회와 업계에서는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인물을 선발해 규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용어 설명: 듀센형 근이영양증(Duchenne Muscular Dystrophy)*
*희귀 X염색체 열성 유전 질환으로, 주로 남아에게 발현되며 근육 단백질 ‘디스트로핀’ 결핍으로 진행성 근력 약화를 초래한다. 치료제가 일부 승인됐지만 근본적 완치 방법은 아직 없다.
기자 관전평
프라사드 박사는 학계와 규제 당국을 오가며 ‘근거 중심·투명성’을 외쳐 온 대표적인 내부 비평가다. 그의 사임은 단일 인사의 교체에 그치지 않고, FDA 내부 의사결정 구조, 특히 정치적·산업적 압력과 과학적 엄정성 간 균형이라는 오랜 과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향후 후임 인선 과정에서 어떠한 절차적 투명성이 확보되는지가 FDA의 신뢰 회복은 물론 글로벌 바이오·제약 업계에도 중대한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