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파리·프랑크푸르트·베이징 등 주요 금융허브가 이번 주 내내 숨 가쁜 일정표를 소화할 예정이다. 시장 참가자들은 미국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오라클 1분기(2026 회계연도) 실적, 프랑스 의회의 정부 신임투표, 유럽중앙은행(ECB) 통화정책회의, 그리고 중국 무역·물가 지표라는 다섯 가지 굵직한 이벤트가 글로벌 자산가격에 미칠 파급력을 면밀히 계산하고 있다.
2025년 9월 8일 08시 44분(현지시간),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9월 정례회의가 불과 1주일가량 남은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무엇보다도 CPI 수치가 연준의 금리경로를 어떻게 재조정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CPI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 ‘빅스텝 금리동결’ 시나리오가, 낮게 나오면 ‘연내 첫 인하’ 기대가 다시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는 그 밖에도 AI(인공지능) 열풍의 민낯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오라클 실적 발표, 유럽 재정·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을 대변하는 프랑스 정치 이벤트와 ECB 회의, 그리고 중국 경기선행지표까지 줄줄이 대기 중이다. 각 변수들은 상호 연동되며 주가·채권금리·환율·원자재 가격에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1. CPI에 쏠리는 시선
미 노동부 산하 미국 노동통계국(BLS)은 12일(목) 8월 CPI를 발표한다. 시장 컨센서스는 전년 동월 대비 2.9% 상승으로, 7월 수치(2.7%)보다 소폭 가속될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연준이 장기 목표로 설정한 2% 물가안정 목표를 여전히 상회하는 수준이다.
물가가 꺾이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시장 냉각까지 동반될 경우, 연준은 ‘물가 안정’과 ‘완전고용’이라는 이중 책무(dual mandate) 모두에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높은 인플레이션·저성장·높은 실업이 동시에 나타나는 경제 상태—에 대한 경계심이 점진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연준은 노동시장의 완화 징후를 더 중시하겠다”—제롬 파월 의장(8월 잭슨홀 미팅 발언 재인용)
라는 기존 발언이 현재로서는 지침 역할을 하고 있다. FOMC 위원들은 이미 ‘블랙아웃 기간(quiet period)’에 돌입했기 때문에, 시장은 과거 발언을 근거로 추가 시나리오를 세워야 한다.
용어 해설: 스태그플레이션은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자주 언급된 경제 용어다. ‘Stagnation(경기침체)’과 ‘Inflation(물가상승)’의 합성어로, 통화·재정정책 모두가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운 총체적 난국을 가리킨다. 한국 투자자에게도 필수적인 개념이므로, 이번 CPI가 왜 중요한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2. 오라클 실적—AI 열풍의 현주소
오라클(티커: ORCL)은 9일(화) 뉴욕증시 마감 후 실적을 공개한다. 비탈 놀리지(Vital Knowledge) 애널리스트들은 오라클 실적에서 특히 두 숫자—잔여 수행 의무(RPO·remaining performance obligations)와 잉여현금흐름(FCF·free cash flow)—에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월가 컨센서스는 RPO가 1,500억 달러 수준, FCF는 18억 달러로 예상한다. 직전 분기에는 -29억 달러였던 FCF가 CAPEX(자본적 지출) 감소 덕분에 반등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라클은 6월 컨퍼런스콜에서 2026 회계연도 총매출 최소 670억 달러를 제시하며 연평균 16.7% 성장 가이던스를 내놨다. 이는 기존 전망(15%)을 상향 조정한 수치다. 생성형 AI 인프라 수요가 계속 확대된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개념 추가 설명: RPO(잔여 수행 의무)는 이미 계약된 서비스 중 아직 인식되지 않은 매출 총액을 의미하며,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기업의 미래 성장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다. FCF는 기업이 영업활동 후 투자·배당·부채상환에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현금을 뜻해, 재무 건전성과 자본배분 전략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3. 프랑스 정부 신임투표—재정개혁 시험대
프랑수아 바이어루 총리는 9일(월) 의회에서 재정 긴축안에 대한 신임투표를 실시한다. 야권 연합이 부결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부결 시 총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해야 한다.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6%인 재정적자를 2029년까지 2.8%로 축소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지출삭감·구조개혁 규모만 438억 유로에 이르는 야심찬 계획이다. 하지만 공휴일 폐지 등 민감한 조항이 포함돼 국민 반발이 거세다.
신임투표 공표 직후 프랑스 10년물 국채금리는 3월 이후 최고치로 뛰었고, 30년물 금리는 2009년 6월 이래 최고 수준을 찍었다. 채권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야권은 적자 해소 전략 없이 정부 타도에만 집중하고 있다”—ING 보고서
4. ECB 금리결정—동결 속 ‘격론’ 예고
ING 등 주요 IB는 ECB가 12일(목) 회의에서 예치금리 2.0%를 두 번째 연속 동결할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금리 동결파와 인하파 간 ‘숨은 갈등’은 시장 예상보다 더 뜨거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7월 기자회견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가 보여준 매파적(hawkish) 어조, 예상보다 빠른 유로존 성장률, 그리고 인플레 재점화 조짐이 겹치면서, 중앙은행이 구체적 가이던스 제시를 미룰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5. 중국 지표—무역·물가로 본 경기진단
중국 해관총서 발표에 따르면, 8월 달러 기준 수출 증가율은 4.4%로 시장 예상치(5.0%)와 7월 수치(7.2%)를 모두 하회했다. 수입 역시 부진해 무역흑자는 1,023억 달러로 확대됐다.
11일(수)에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생산자물가지수(PPI)가 발표된다. 세계 2위 경제가 디플레이션 압력을 벗어났는지 확인할 중요한 이벤트다. 중국 수요와 수출 흐름은 원자재·반도체·자동차 등 한국 수출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망과 변수
이번 주 다섯 이벤트는 서로 교차하며 “긴축과 완화의 힘겨루기”라는 큰 흐름 속에서 자산별 밸류에이션을 재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CPI가 예상치를 웃돌면 달러 강세·금리 상승·기술주 변동성 확대가, 반대로 낮게 나오면 위험자산 선호가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크다.
오라클 실적이 AI 투자붐의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준다면, 관련주 밸류에이션이 일제히 리레이팅될 수 있다. 프랑스·ECB 변수는 유로채·유로화에, 중국 지표는 원자재·신흥국 통화에 각각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궁극적으로 투자자는 데이터 민감도와 정책 불확실성을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변동성이 높아질수록 리스크 관리와 포트폴리오 다변화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