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 사상 초유의 ‘매출 공유’ 모델, 무엇이 달라졌나
2025년 8월 11일, 파이낸셜타임스 단독 보도로 확인된 엔비디아·AMD ‘중국 매출 15% 로열티’ 합의는 단순한 수출 재개 뉴스가 아니다. 이는 미국 정부가 통제(제재)와 과실(royalty)을 결합해 자국 전략자산의 해외 거래에 지분 참여를 선언한 첫 사례다. 10%도, 20%도 아닌 15%라는 숫자에 시장은 술렁였지만, 정책 목표·산업 구조·투자 지형에 미칠 장기 파급력은 아직 과소평가돼 있다. 본 칼럼은 향후 10년 글로벌 반도체·AI 생태계가 어떻게 재편될지, 그리고 투자자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를 입체적으로 해부한다.
1. 정책 해설 ― ‘통행세’ 도입의 배경과 메커니즘
1-1. 기존 규제 체계의 한계
- 2022‧2023년 두 차례 수출 통제 : A100·H100→A800·H800→H20까지 단계적 봉쇄.
- 우회·탈규제 문제 : 차이나 특화 다운그레이드 칩, 제3국 경유 트랜스십먼트, 클라우드 렌탈.
- 자국 기업 역풍 : 매출 공백·재고 적체·주주가치 훼손 논란(특히 2024년 말 H100 재고 이슈).
1-2. 15% 로열티 모델의 구조
항목 | 기존 통제 | 새 모델 |
---|---|---|
허가 절차 | 케이스별 EAR(수출규정) 심사, 불확실성 극대 | 표준 계약 + 정률 로열티, 예측가능성 제고 |
정부 수입 | 0 | 매출 × 15% |
기업 매출 | 사실상 0 (라이선스 지연) | 85% 회복, 단 이익률 희석 |
안보 리스크 | 완전 차단 → 중국 자체기술 가속 | 성능·용도·추적조건 부과 + 수익 공유 |
즉, ‘완전 봉쇄’가 아닌 ‘통제된 접근(Controlled Access)’으로 전환하면서, 미국은 안보‧경제 이중효과를 노린다.
2. 장기 영향 시나리오 ― 공급망·수요·경쟁력
2-1. 미국 : 세수·R&D 재투자 선순환 vs. 규제 선례 논란
15% 로열티가 2026년부터 연 70억~9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이는 CHIPS+F 펀드와 별개 재원으로 차세대 반도체·양자·광컴퓨팅 R&D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업계는 “차후 자동차·우주·바이오까지 확대 적용될 우려”를 제기한다.
2-2. 중국 : 시간 벌기 vs. 기술자립 가속
- 단기 : H20·MI308는 여전히 글로벌 최상위 AI 성능. 빅테크(바이두·알리·텐센트)가 L4‧L5 대규모 모델 훈련 공백을 해소.
- 중기 : 로열티 비용 전가 → 총소유비용(TOC) 상승 → 화웨이 Ascend, 바이트댄스·알리 자체칩 투자 가속.
- 장기 : 인센티브 구조상 “탈미국 IP” 행보 강화. EDA·장비·HBM까지 ‘중국판 수직통합’ 시계 빨라질 전망.
2-3. 글로벌 공급망 : ‘회색지대 무역’의 제도권 편입
- 동남아·중동 데이터센터 허브(싱가포르·사우디·UAE)로의 주문 이동 예상.
- TSMC·삼성 파운드리 : 라이선스 로열티를 가격에 반영, 파운드리 ASP 3~4% 상승 여지.
- HBM‧CoWoS 패키징 병목 : SK하이닉스‧삼성‧마이크론 신규 설비 투자 결정에 긍정적.
3. 산업별·기업별 승자와 패자
3-1. 반도체 설계·팹리스
- 엔비디아 : 단기 매출 회복 → 이익률 2~3%p 희석. 그러나 플랫폼 잠금효과 강화.
- AMD : MI300 대비 MI308 라인업 차별화 필요. 서버 GPU 점유율 2년內 25% 목표.
- 중국 팹리스(Biren, Moore Threads) : 자국 수요·정부 보조금 확대↑, 단 특허소송 리스크↑.
3-2. 파운드리·장비·소재
- TSMC·삼성전자 : 북미·일본 공장 투자가 ‘친미계약’ 수주에 유리. 3D IC 패키징 ↗
- ASML : ‘로열티 수출’이 현행 EUV/DUV 금수 범위를 완화할 지 지켜봐야.
- 장비 서브티어(원익IPS·램리서치) : 고성능 CoWoS, 패키징 검사 수요 30% 증가 추정.
3-3. 클라우드·빅테크
알파벳·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은 로열티 적용 대상이 아님. 미국 내 GPU CAPEX 부담 완화. 하이퍼스케일러 솔직한 속내: “중국 고객이 미국 GPU를 쓰더라도 로열티가 미국 정부에 귀속, 글로벌 경쟁 왜곡 완화.”
4. 금융시장·투자전략 로드맵
4-1. 밸류에이션 프레임 전환
▶ 기존 : “중국 매출 = 불확실성 할인(차이나 디스카운트)”
▶ 향후 : “중국 매출 × 0.85 = 안전한 현금흐름”으로 재평가 → 반도체 PER 상단 5~10% 리레이팅 여력.
4-2. ETF·파생상품 체크리스트
- SOXX‧SMH : 엔비디아 비중 20% 이상, 규제 불확실성 완화로 리스크 프리미엄 감소.
- KWEB : 중국 빅테크 AI CapEx 증가 → 서버 ODM·쿨링·파워IC 편입 ETF 관심.
- 옵션 전략 : 엔비디아 3개월 ATM 풋·콜 IV 75% 수준. ‘콜 대 다이아고날 스프레드’로 변동성 이익 추구.
5. 정책 리스크·불확실성 체크
대선 사이클: 민주·공화 모두 안보 드라이브를 강화 중이지만, 공화당 내 보호무역 강경파는 “15%는 낮다, 30%까지 가능” 언급. → 상·하향 시나리오 동시 대비 필요.
WTO·무역 규범: 중국이 ‘차별적 내국민 대우’ 제소 가능성. 다만 WTO 상소기구 정지 상태라 단기 영향 제한.
유럽·한국·대만의 입장: “미국 로열티 전가 → 역차별” 논란, 대체 공급망(무로열티 GPU?) 가능성.
6. 필자의 통찰 ― ‘세율 게임’ 시대의 3대 투자 원칙
- 불가역성 인식 : 미·중 기술 디커플링은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다. 투자자는 정치 프리미엄을 리스크팩터로 내재화해야 한다.
- 멀티 로케이션 수혜주 집중 : 생산·연구 거점을 북미+동아시아+동남아에 분산한 기업은 규제 변화 속에도 EPS 변동성이 낮다.
- 지적재산권·생태계 잠금효과 검증 : 규제가 강화될수록 IP 보유와 플랫폼 락인(lock-in)이 기업가치의 핵심 안전판이 된다.
■ 에필로그 ─ ‘15%’ 이후, 2030년을 상상하다
이번 조치는 ‘워싱턴 컨센서스 2.0’의 신호탄이다. 기술패권 경쟁이 ‘금지’에서 ‘과실 공유’ 단계로 진화했고, 그 여파는 반도체뿐 아니라 배터리·생명공학·우주산업으로 확산될 공산이 크다. 2030년, 우리는 “美 정부가 전략 산업 ‘통행세’를 통해 민관합작 R&D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평가와 “국가가 시장을 과도하게 잠식해 혁신을 저해했다”는 양면적 서술을 동시에 마주하게 될 것이다. 투자자는 이 거대한 변곡점에서 규제의 수혜자와 규제 회피의 혁신가를 구분해낼 안목이 필요하다. 지난 10년의 ‘글로벌라이제이션’ 잣대는 이제 유효하지 않다. 다음 10년을 그려 줄 새 좌표계가 바로 ‘15% 로열티’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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