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401(k) 퇴직연금, 사모자산·가상자산 ‘빅뱅’… 장기 리스크·기회 총체 분석

■ 머리말 – 왜 401(k)의 ‘대체투자 개방’이 중요한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8월 초 서명한 ‘401(k) 대체투자 확대’ 행정명령은 미국 자본시장의 플랫폼 규칙을 뒤흔드는 사건이다. 미국 확정기여형 퇴직연금(401(k)·403(b)·457 등)은 9조 달러(약 1경2천조 원)에 달하는 거대 자금 풀이다. 이 자금이 사모주식·사모대출·비상장 부동산·가상자산으로 흘러들어 갈 경우, 단순히 상품 라인업이 늘어나는 차원을 넘어 • 자본 조달 구조 • 리스크 전가 구조 • 정책·규제 패러다임 전환이 동시에 촉발된다.


1) 제도 변곡점: ERISA 50년 체제의 균열

ERISA(근로자퇴직소득보장법)가 1974년 제정된 이후, 401(k) 시장에는 ‘공모시장 위주, 저비용 패시브 중시’라는 불문율이 자리잡았다. 그러나 2020년 6월 노동부가 ‘사모펀드 편입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데 이어, 2025년 행정명령은 사모자산·가상자산 포함을 명시적으로 띄운 첫 대통령급 조치다.

표면적 논리는 ‘장기투자자가 고수익·저상관 전략을 누릴 기회 확대’다. 문제는 ERISA가 부여한 수탁자 의무(fiduciary duty)가 사모·가상자산과 충돌 혹은 재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 정보 비대칭(기업 재무·운용전략 비공개)
  • 고수수료(연 2%+성과 20%)
  • 유동성 부족(락업·환매제한)
  • 가격 투명성 결여(평가모델 다양)

모두 ‘참가자 최선의 이익’ 원칙을 위협할 잠재 요소다.


2) 거버넌스 충돌: 고용주·운용사·규제당국의 삼각 갈등

(가) 고용주(Plan Sponsor)
미국 기업은 401(k) 메뉴 구성·레코드키핑 수수료 협상 등 총괄 책임을 진다. 사모·가상자산 편입 후 변동성이 폭증하거나 사기 사건이 발생하면 집단소송(ERISA class action) 위험이 커진다. 최근 인텔·시티그룹·존슨앤드존슨 등 대기업도 수탁의무 소송에 시달렸다.

(나) 자산운용사·레코드키퍼
BlackRock·Vanguard·State Street 같은 기존 패시브 거인은 ‘저비용 인덱스’ 모델이 흔들릴 수 있다. 반면 Blackstone·KKR·Apollo·Ares 등 대체투자 하우스는 수탁 면책(safe harbor) 확보를 요구하며 시장 진입을 서두른다.

(다) 규제당국(DoL·SEC·CFTC·IRS)
가상자산은 증권·상품·통화·지불수단이 혼재된 영역이다. 현행법상 명확한 감독 주체가 분산되어 있어, 복수 규제기관이 ‘충돌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


3) 자본시장 파급: 사모·가상자산 밸류에이션 상승 vs. 변동성 전이

효과 긍정적 시나리오(3~5년) 부정적 시나리오(3~5년)
사모주식 연평균 10~12% 기대수익, 혁신기업 자본조달 확대 투자자 수요 과열→밸류에이션 버블→수익률 하락
사모대출 중소·비상장기업 유동성 개선, 은행 대출 공백 보완 신용축소 국면에서 부실화, 401(k) 참가자 손실 전가
비상장 부동산 장기 임대캐시플로, 인플레이션 헤지 금리 급등 시 평가손, 환매정지 사태 반복(REIT 교훈)
가상자산 포트폴리오 분산, 신흥 자산계층 조기 노출 고변동→노후자산 잠식, 커스터디·해킹 리스크 확산

자료: 필자 자체 시뮬레이션(2025)


4) 장기 전망: ‘3단계 침투’ 로드맵

Phase 1 (2025~2026) – 탐색기

  • 대형 운용사, 타깃데이트펀드(TDF) 내부 3~5% 포션으로 사모·가상자산 편입 파일럿
  • 연 20억~30억 달러 규모 세컨더리 거래 플랫폼 성장
  • DoL, 안전장치 지침(Safe Harbor Notice) 초안

Phase 2 (2027~2029) – 확산기

  • 401(k) 총 자산의 5% 내외가 사모·가상자산으로 이동(약 4,500억 달러)
  • 주(tax) 단위로 가입자 교육 의무(education fiduciary) 법제화
  • 암호화폐 ETF·토큰화 부동산 펀드 Qualified Default Investment Alternative(QDIA) 지정 논쟁

Phase 3 (2030 이후) – 제도 정착·리스크 검증기

  • 베어마켓·신용사이클 반전 시 손실 현실화, 정책·소송 회오리
  • 포트폴리오 최적화 알고리즘에 실물자산·디지털자산 통합
  • 미국 모델, 캐나다·영국·한국 퇴직연금에 파급

5) 한국 투자자·정책 입안자에게 주는 인사이트

한국도 2024년 이후 디폴트옵션 도입·IRP 활성화 등으로 ‘투자형 연금’ 전환이 진행 중이다. 미국 401(k) 사례는 다음 교훈을 준다.

  1. 투명성 핵심 – 사모·가상자산 전담 레귤레이터·평가모형 필요
  2. 교육 체계화 – 가입자 이해도에 따라 단계별 접근(초급·중급·고급)
  3. 리밸런싱 자동화 – 고변동 자산 비중 증가 시 포트폴리오 드리프트 방지 장치 강화
  4. 수수료 상한제 – ‘2 and 20’ 국내 도입 시 성과보수 캡(cap) 논의 필수

6) 결론 – ‘포용적 성장’ vs. ‘부의 양극화’ 갈림길

401(k)의 대체투자 확대는 미국 자본시장에 생태계 리부트 기회를 제공한다. 스타트업·중견기업은 새로운 자금줄을 확보하고, 근로자는 고수익 프리미엄을 공유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 커스터디 해킹 • 펀드 성과 부진 • 고수수료 구조 등의 리스크가 노후생활 안전망을 위협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문제는 ‘정책 속도’‘시장 속도’ 간 괴리다. 자본은 규제보다 빠르게 움직이며, 교육·감독이 뒤따르지 못하면 반복되는 ‘연금 스캔들’이 재연될 수 있다. 50년 전 ERISA가 노동자 노후를 지키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새로운 50년을 위한 거버넌스 혁신이 절실하다.

한국·EU·호주 등도 유사한 과제를 안고 있다. 우리는 지금 세계 최대 연금 자금 풀이 규제 울타리를 넘어 사모·디지털 영역으로 진입하는 역사적 장면을 목도하고 있다. 향후 1년, 그리고 그 이후—401(k) 실험의 성패가 글로벌 연금·자본시장의 장기 로드맵을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