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말: “파열음이 시작됐다”
2025년 9월 3일,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대만 TSMC·한국 SK하이닉스·삼성전자의 중국 공장에 부여해 온 ‘검증된 최종 사용자(Validated End User·VEU)’ 지위를 전격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2022년 10월 발효된 1차 대(對)중국 수출 규제 이후 약 3년 만에 나온 추가 고강도 조치다. 내년 1월 1일부터 세 기업은 중국 현지 공장에 미국산 장비·SW·IP를 반입할 때마다 건별 면허를 새로 취득해야 하며, “기존 설비의 유지·보수만 허용하고 공정 업그레이드·용량 증설은 불허”라는 단서가 붙었다.
1. VEU 폐지 결정의 핵심 내용
- 대상 기업: TSMC 난징 12인치 파운드리(28nm), SK하이닉스 우시 D램·낸드 팹, 삼성전자 시안 V낸드 팹
- 시행 시점: 2026.01.01 (90일 유예)
- 허용 범위: 현행 장비·공정 유지보수(O&M) (✅)
- 제한 범위: 신규 장비 반입·기존 장비 성능 향상·라인 증설 (❌)
- 정책 목표: “첨단 시스템·메모리 공정이 중국 내에서 14nm(로직)·16nm(파운드리)·128단(낸드) 이상으로 고도화되는 것을 억제” — BIS
2. 단기 충격은 제한, 그러나 ‘장기 모종(母種)’이 뿌려졌다
기업 | 중국 매출 비중 | 현지 공정 | 대체 가능성 |
---|---|---|---|
TSMC | 약 3% | 28nm 메인·폴더블 OLED Driver IC | 내수 소비자向 칩에 국한, 타격 미미 |
SK하이닉스 | 17% | D램 1XB~1Z 낸드 128단 이하 |
성장 둔화 국면, 수율 안정성 위해 韓·美 재투자 필요 |
삼성전자 | 8% | V낸드 128단·176단(예정) | 차세대 236단 전환 차질, 美 텍사스 라인 확대 불가피 |
표면적으로 매출 타격은 크지 않다. 실제 2024년 4분기 기준 TSMC 난징 매출은 전체의 2.8% 수준이다. 그러나 “기존 설비는 돌리되, 업그레이드는 불가”라는 조항이 장기적으로 파급력을 갖는다. 반도체 장비·소재는 평균 18~24개월 주기로 교체·개선되며, 미세화·적층화 경쟁에서 1세대 뒤처지면 설계 자산과 영업 파이프라인 전체가 낙후된다.
3. 美 국내 투자 유인 → ‘리쇼어링 2.0’ 가속
동일 날짜 CNBC 보도에서 NBIM·세계 국부펀드가 뉴욕 오피스를 사들이는 소식, 월마트가 핀테크·통신을 묶어 ‘슈퍼 앱’ 생태계를 넓힌다는 기사 등이 함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배경은 단순하다. 자본은 정책 리스크가 낮고, 규제 혜택이 큰 곳으로 이동한다.
2025~2028년 미국 반도체 CAPEX 가중치
TSMC 애리조나 2·3공장 — 600억$ ↑
삼성 텍사스 테일러+오스틴 — 400억$ ↑
SK하이닉스 인디애나 패키징 캠퍼스 — 150억$ ↑
금액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공정 레벨과 투자 타임라인이다. TSMC 애리조나 2라인은 “2nm GAA”로 상향, 삼성 텍사스는 “Gate-All-Around(3nm)” 공정으로 상향이 유력하다. 즉, ‘중국→동맹국’으로의 파운드리·메모리 공정 피버 피치가 높아진다.
4. 기술적·거시적 후폭풍
4-1) 공급망 스플린터링과 인플레이션
• 2027년 이후 DRAM・NAND 캐시
미국 내 가동(테일러·인디애나) 단가는 중국 우시·시안 대비 15~18% 고가로 추산된다.
• Fed가 연내 50bp 인하로 ‘정책 피봇’을 가정해도, 리쇼어링으로 인한 구조적 비용 인상은 2026~2028년 PCE 디플레이터에 0.2~0.3%p 상방압력을 더한다는 분석이 월가 컨센서스다.
4-2) AI·클라우드 CapEx의 ‘불가역성’
AI 트레이닝 팩터인 GPU/TPU 수요는 2025년부터 HBM3E·DDR6 메모리 없이 성능을 끌어올리기 어렵다. 미국은 메모리 밸류체인까지 자국·우방 내 클러스터를 구축해, AI 인프라 전체를 안보 자산화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4-3) 중국의 대응 시나리오
- 장비 국산화 가속 — SMEE(상하이마이크로전자) 노광장비 28nm→14nm 양산 로드맵 앞당김
- DRAM·낸드 집중 보조금 — CXMT·YMTC 합계 출하량을 2028년 20%P 끌어올리는 ‘황금열차(黄金列车)’ 프로젝트 가동
- 레어어스·흑연 수출 통제 카드 재점화 — 2024년 對美 흑연면허제 성공 경험을 확장
→ 결과적으로 ‘디커플링 ↔ 보복 ↔ 추가 규제’라는 악순환이 장기 상수화될 가능성이 높다.
5. 주식·채권·원자재 시장에 던지는 다중 시계(視界)
- 미국 반도체 ETF(SOXX) EPS 추정치는 2024E 20.1$ → 2025E 27.4$로 상향되지만 벤더 다변화 CAPEX로 FCF Margin은 19%→15%로 하락
- 장기 美 30Y 국채금리 4.8% 돌파 시 ‘리쇼어링 프리미엄’이 구조적 금리 하단을 4%대로 끌어올릴 확률 ↑
- 구리·알루미늄 등 전력·배선 소재 수요 증가, LME 3M 구리 선물 10,000$/t 재돌파 시나리오(2026F) 현실화
- 달러화 강세 지속: 美-中 기술 냉전으로 글로벌 달러 결제 비중이 되레 확대되는 ‘달러 패러독스’
6. 정책·기업 전략 로드맵: 3대 체크포인트
6-1) CHIPS Act 2.0 vs. 동맹국 인센티브
미 의회는 2026년 만료 예정인 CHIPS 보조금을 ‘50% 세액공제+R&D 비용 전액 상계’로 업그레이드하는 2.0 법안을 검토 중이다. 한국·대만·일본 역시 ‘매칭 프로그램(자국 매칭 보조금)’을 논의하면서, 보조금 레이스가 국제적 죄수의 딜레마로 전환될 가능성.
6-2) 국제 반도체 표준·특허 전선
SEMI·JEDEC에서 미국 주도의 ‘안보 인증 공정 레이어’ 도입을 추진할 경우, 중국·러시아는 자체 표준 포럼을 출범시켜 이중 규격 시대가 열릴 공산이 있다.
6-3) ESG·탄소국경세 연동
제조지 이동 과정에서 Scope 3 탄소 배출이 증가하면, EU CBAM·美 IRA 인센티브와 충돌하여 ‘친환경·안보’ 이중 준수라는 추가 비용이 발생.
7. 이중석 칼럼니스트가 제안하는 포트폴리오 방정식
- ‘두뇌와 땅’ 동시 보유
ASML·KLA·Lam Research → 장비 슈퍼사이클 최대 수혜
Prologis·NBIM계 리츠 → 리쇼어링 물류캠퍼스 부동산 - 메모리 스프레드 플레이
DRAM 현·선물 가격 디커플링 활용, HBM 4 수요 견인 예상되는 Micron 2027 선행 Call 옵션 관심 - 에너지·원자재 헤지
구리·희토류 LME 옵션 롱, 차입여력 낮은 신흥국 채권은 언더웨이트
※ 투자 판단은 독자 책임이며, 필자는 개인 포지션이 없음.
8. 결론: ‘공급망 무의식의 시대’가 저문다
컴퓨터·스마트폰·AI 서버를 사용할 때 “이 칩은 어디에서, 어떤 규제 아래 생산됐는가”를 따지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그러나 VEU 특혜 철회는 소비자의 무의식을 정책 변수로 끌어올렸다. 향후 5~10년 동안 반도체 공급망은 ① 복수 거점 유지(China+1) ② 보조금 의존 ③ 표준 이원화라는 구조적 함정을 돌파해야 한다. 인류의 ‘연산 능력 곱셈법’을 좌우할 미세반도체 전쟁은 이제 막 중반전에 돌입했다. ‘생산지=안보 지대’라는 공리를 다시 새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