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이중석(경제 칼럼니스트·데이터 분석가) | 게재일: 2025-07-07
Ⅰ. 서론 – 2025년 하반기 글로벌 경제‧시장 최대 복병은 ‘관세’다
7월 9일 0시(워싱턴 기준)가 다가오면서 월가 트레이딩 데스크, 브뤼셀 유럽위원회(EU Comission) 실무진, 한국 수출기업 기획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들이거나 포기하라”는 서한에 서명함으로써, 불과 몇 시간 만에 미·EU 무역 지형이 180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관세율은 최대 50%, 적용 품목 가짓수는 5,700개에 달할 것이라는 게 백악관 브리핑 룸 주변의 컨센서스다.
본 칼럼은 ①관세가 실제 발효될 경우와 ②베어본즈(bare-bones) 합의가 체결돼 ‘관세 유예+협상 계속’ 시나리오일 때를 모두 상정한다. 최소 1년 이상—즉 2026년 7월까지—달러·물가·공급망·금융시장을 관통할 구조적 충격을 ▲데이터 ▲사례 ▲정책 ▲기업 4개 축으로 해부한다.
Ⅱ. 왜 美·EU 관세분쟁은 2018년 미·중 무역전쟁보다 위험한가
1) 글로벌 공급망 중첩도 ①(EU vs 中)
- 세계무역기구(WTO) 투입산출 데이터에 따르면, EU 제품 1달러가 미국 소비시장에 도달하기 전 거치는 공급망에 중국산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18.7%다. 미·중 관세전쟁이 ‘G1 vs 제2공급망’ 전선이었다면, 이번엔 ‘G1 vs G2+G3 중첩망’ 전선이다.
- 따라서 관세 50%는 단순 양자 가격 인상에 그치지 않고, 연쇄 누적 관세(cascading tariff)·다단계 환율 재조정 충격으로 증폭된다.
2) 美·EU 고부가 가치 교역 구조
EU→미국 수출의 67%가 항공기·의약품·럭셔리·기술 장비 등 고부가 품목이다. 같은 관세 50%라도 원단가가 높은 만큼 절대 인상액(달러)이 미·중 때보다 훨씬 크다. 이는 ①CPI 상승 ②기업 마진 압축 ③R&D 축소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3) 달러 위상과 통화정책 ‘엇갈림’
2018~2019년 연준은 점진적 금리인하 사이클을 밟을 수 있었다. 2025년은 정반대다. 연준은 4.00% 기준금리를 ‘상저하고’로 유지하며 디스인플레이션 경로를 사수하고 있다. 관세가 7월에 발효되면, 수요 측 인플레가 아닌 공급 측 쇼크가 CPI를 다시 자극한다. 물가 목표(2%)를 지키기 위해 연준이 인하 버튼을 더 늦추거나, 심지어 동결을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달러 강세→EM 통화 약세→글로벌 유동성 회수로 순환된다.
Ⅲ. 3대 거시 변수 ①CPI ②달러 DXY ③10년물 금리 — 데이터 시뮬레이션
시나리오 | ’25 Q3 CPI 전망 | ’26 Q1 CPI 전망 | DXY (+12M) | 美 10Y 국채금리 |
---|---|---|---|---|
● 전면 관세 50% | 3.9% → | 3.2% | 109 p | 4.85% |
● 베어본즈 합의(10% 일괄) | 3.6% | 2.8% | 104 p | 4.60% |
● 유예 + 협상 지속 | 3.4% | 2.6% | 101 p | 4.35% |
*이중석 추정치. DXY = 달러지수, p=point
Ⅳ. 부문별 파급 – 6대 산업 벼랑 끝 시나리오
- 자동차·배터리 – 독일 DAX30 내 VW·BMW·메르세데스 3사는 대미 매출 비중 20~28%. 관세 50%면 EBIT 마진이 평균 5%p 증발. 한국 배터리 3사(LG 엔솔·삼성SDI·SK 온)도 북미 공장 IRA 세액공제를 유지하려면 현지 부품 비율 90% 목표를 1년 앞당겨야 한다.
- 의약·바이오 – EU 빅파마(노바르티스, 로슈, 사노피)는 특허 만료 직전 제품에 집중 관세가 붙을 경우 ‘캐시카우’ 약가 인하 압박+관세 2중고. 결과적으로 R&D CapEx 가위질.
- 사치재·뷰티 – 루이비통·에르메스 등 럭셔리 하우스는 소매가 인상으로 전가하겠지만,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 밀레니얼 고소득층 수요 탄력성이 변수.
- 클린테크 – 태양광·풍력 터빈에 50% 관세가 현실화되면 kWh 단가가 IRA 도입 이전 수준으로 회귀. 미 행정부 ‘넷제로 2035’ 달성 난망.
- 항공우주 – 에어버스의 달러 매출 92% 중 45%가 북미. 반덤핑 관세까지 동시 적용 시 슈퍼-점보 A350 주문 재협상이 잇따를 수 있다.
- 희토류 · 반도체 장비 – ASML EUV 장비가 관세 리스트에 포함될 경우 대체 공급망 “없음”. 삼성·TSMC 미국 공장 증설 일정 차질.
Ⅴ. 투자전략 – 5단계 체크리스트
1단계 (발효 T-1M) : 디펜시브 리밸런싱—소비재·헬스케어·유틸리티 동일가중 ETF 비중 +5%
2단계 (T 주) : 달러 인덱스 105 초과 시 EM FX 헤지 (원화·유로화 3M 풋옵션)
3단계 (발효 +3M) : 美 CPI MoM > 0.4% 두 달 연속 시 TIPS·골드 ETF 편입
4단계 (+6M) : 연준 도비시 전환 확인 시 하이일드·BDCs 선별 진입
5단계 (+12M) : 미·EU 합의 재개 or WTO 분쟁 패널 성립 시 리스크온 전환—반도체·산업재 동일가중 ETF 30% 증액
Ⅵ. 한국 경제·기업에 주는 시사점
1) 수출 의존형 밸류체인 ‘중첩 리스크’
한국 기업은 EU 수출의 미국 엔드마켓 의존·미국 공장의 EU 부품 의존이라는 ‘X자 구조’를 갖고 있다. 관세는 두 축 모두를 자극한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은 엔진 부품 27%를 독일 ZF에서, 현가 부품 18%를 프랑스 포레시아에서 들여온다. 50% 관세가 그대로 전가되면 투입원가 +7.2%, MSRP +3.1%.
2) K-FX 수출·한미 방산 캡티브 효과
EU 부품(사프란 엔진) 비중이 35%인 한국형 전투기 KF-21의 인도네시아 추가 물량은 가격 경쟁력이 낮아질 수 있다. 반면 미국이 방위 예산을 확대하면 한국 K-9 자주포·천궁 미사일 판매가 탄력받을 수 있다.
3) 환율·금리 시나리오
하반기 원/달러 1,420원 테스트 가능성.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최소 2분기 동결할 공산이 크지만, 관세→인플레→연준 매파 지속→달러강세 순환이 심화되면 2026년 초 한은 0.25%p 빅스텝 인상 시나리오도 배제 불가.
Ⅶ. 결론 – ‘관세 ≠ Zero-sum’… 구조적 대응이 유일 해법
관세는 결코 승자·패자 구도로만 귀결되지 않는다. 미·EU 양측 모두 공급망 재편과 비용 전가 과정에서 심대한 변동성을 겪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지정학적 블록화 → 노동생산성 하락 → 글로벌 성장률 잠식의 연쇄작용을 우려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①유연한 통화·재정 정책 공조, ②다층 공급망(China +1 → EU+1 → NA +1), ③AI·친환경 기술을 통한 비용절감이라는 3단 병행 전략이다.
기업·투자자·정책당국 모두 ‘7월 9일’ 단 하루에 촉각을 곤두세우기보다, 12개월짜리 ‘타임라인 매니지먼트’를 체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세계는 이제 정치적 데드라인이 곧 경제적 리스크 프리미엄이 되는 시대에 들어섰다. 관세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 2025 이중석.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